내가 살고있는 곳은 낙동강과 밀양강이 만나는 낙동강 하류 지역이다. 몇 천년 동안 황무지로 버려졌던 땅이 옥토로 바뀌어가던 1964년 3월에 마을이웃 76명과 함께 영세를 받았었다.
그러나, 도시화의 물결이 농촌으로 밀려오자 젊은이들은 농촌을 등졌고, 처녀들도 도시로만 시집을 가곤 하였다.
이런 탓으로 공소신자들은 갈수록 줄어들었고, 새로 영세한 분들이 들어오기도 했으나 분위기는 썰렁한 상태였다. 그래도 나는 10여년 간은 열심히 다녔으나 점점 교회에 빠지는 횟수가 늘기 시작했다. 봄 가을 판공 때 두번 찾아 오시는 신부님 얼굴을 뵙곤하던 것이 멀어져가고 급기야는 냉담의 자세로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일요일, 문득 공소를 찾았을 때, 공소예절 시간이었는데도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게 아닌가.
이웃에 물어본즉, 『두 세 사람 나오는가 싶더니 오래전부터 신자들의 발길이 끊어진 것 같다』는 대답이었는지라 순간 슬픈 마음이 들어, 녹으려던 내 마음은 다시 얼어붙어 더 깊은 냉담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회두를 섭리하신 하느님의 은총이었던지 냉담 중에도 매년 1월 1일엔 빠짐없이 공소를 아침 일찌기 한 바퀴씩 돌고 오는 것이 버릇이 되고, 문득 문득 냉담으로 보낸 13년의 세월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가 냉담 생활 중에 과연 무엇을 얻고 무엇을 했는지 생각하니 허무한 생각이 들었으나 13년 만에 고백 성사보기는 망설여졌다.
그러나, 13년간의 냉담자에게도 하느님은 당신에게 돌아올 기회를 주셨던 것이다.
작년 6월 2일 택시를 타고 가다 불의의 큰 교통사고를 만났다. 만일 운전수가 더 큰 실수를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60일간의 입원치료를 마치고 돌아온 어느 여름날, 며칠 동안 계속된 불면증세와 두통과 가슴이 아픈 증세로 견딜 수 없어, 누워있던 몸을 힘겹게 움직여 묵주를 쥐고 하느님께 참다움 기도를 드렸다. 그때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고 다시 기도하라는 말씀이 귀를 울렸다. 나는 정신이 아찔하여「하느님 이제는 13년간의 죄스러운 냉담생활을 청산하고, 당신의 성전에서 마지막 일생을 기도와 찬미, 감사로써 당신의 진리대로 정직하게, 절제하며 이기심을 버리고 살겠읍니다」라고 정신없이 기도드렸다.
기도 중에 지쳐 깜박 잠이 들었고 새벽 5시에 눈이 뜨였는데, 아!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 토록 아프던 머리와 가슴이 깨끗하게 낫고, 마음이 상쾌해졌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작년 8월 24일, 13년간의 냉담을 청산하고 내발로 공소를 찾았을 때, 우뢰와 같은 박수로 맞아주는 20여명의 신자들의 품속에서 다시금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절실히 체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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