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신부로 있을 때 교우가정을 틈나는 대로 방문했는데 많은 교우들이 자기자녀들의 가정에서의 교육, 특히 신앙교육에 관심이 없음을 보고 놀란 적이 자주 있었다. 가정방문 때 마침 국민학교 4ㆍ5학년 정도로 보이는 그 집 아들이나 딸이 집안에 있을 경우 부모가 자기 자녀를 본당신부에게 대개 이렇게 소개하였다. 『신부님, 이놈 좀 머라카이소!(야단치세요!)성당에 가라캐도 영안갑니더. 오늘 오신 김에 혼 좀 내주고 가이소!』
본당신부는 그 꼬마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자, 주일학교에도 나오지 않았을 테고, 기도란 것도 거의 해본 적이 없었을 이 천진난만한 꼬마에게 무슨 죄가 있나? 나마저 이 꼬마를 나무랐다가는 성당이란 곳은 야단만 치는 곳으로 평생오해 할까봐 야단치기는커녕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며 『어머니 아버지말씀 잘 듣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하고는 쓸쓸한 기분으로 그 집을 빠져나와야하는 경험을 자주하곤 하였다.
부부가 다 성당에 열심히 다니고 본당의 간부역을 맡아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영향력이 꽤나 있는 교우가 한분이었다. 그에게는 고등학교3학년인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고2때까지는 성당에는 빠지고 않고 열심이었다. 그런데 고3이 되고 나서는 한 번도 그 학생의 얼굴을 볼 수 없어서 하루는 그 아버지에게 왜 요즘 아드님이 성당에서 통 보이질 않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아버지의 대답이『신부님, 이제 그놈도 고3이 되어서 바쁩니다. 입시공부 하라고 제가 성당에 못나가게 했습니다. 좋은 대학에 합격하고 나면 그때 또 열심히 성당에 다니도록 해야지요!』라며 당연한 듯 말하는 것이었다. 그 후 그 아들은 서울의 좋은 대학에 합격하여 서울 유학이 시작되었고 그때부터 부모의 품을 떠나 살기 시작하였으며, 4년의 대학생활, 2년반의 군대생활, 3년간의 직장생활동안 줄곧 성당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음을 나는 들어 알고 있다.
내가 가진 신앙은 나에게 어떤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참으로 보람 있게 사는 것이며, 인간답게 사는 길인가? 어떤 삶이 성공적인 삶이며 나는 무엇을 내 삶의 최고목적으로 삼는가? 나는 내 자식을 어떤 인간으로 키우고 싶은가? 나는 내 자식을 내 품에서 키우는 동안 어떤 삶의 양식(스타일)을 가르쳐 주고 싶은가? 하느님을 알고 두려워하고 이웃 인간을 존경하며 살게 하고 싶은가? 아니면 하느님도 모르고 이웃도 모르고 그저 자기만을 아는 그런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가? 이모든 문제가 곧 인생관이요, 인간관이요, 가치관이다. 한마디로『삶의 의미』를 결정짓는 믿음이요, 결단이요, 신앙이며 신념인 것이다.
그런데 세례 받은 사람은 많아도 신앙에서 우러나온 그리스도교적 인생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 그 인생관과 가치관을 자식들에게 이웃들에게 전수시켜주는 신앙인은 드문 세상이다.
외국에서 살고 있는 많은 교포들이 자기 자녀들의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도록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2세들은 생긴 것은 한국사람인데 한국말을 거의 할 줄 모르는 것이다. 자녀들이 대학생이 되고 난 후에야 한국에 보내기도 하고 뒤늦게 한국어 학교에도 보내 보기도하지만 이미 때는 늦는다. 혀가 서양화되어서 서양 사람이 발음하듯「치약」이라고 하는지「쥐약」이라고 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 이제는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하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한국말을 할 수가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하나의 언어가 어려서부터 뼈 속 깊이 배어서 오랜 세월이 흐르는 가운데 쓰여 지고 자기 것으로 화해야 비로소 모국어가 되듯이, 삶의 의미도, 또 무엇이 가장 고귀한 것이며 가치 있는 것이며 보람된 것인가 하는 이생관, 가치관, 신앙도 부모가 자식에게 어려서부터 몸에 배게 가르치고 전수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부모야말로 자녀들의 첫 번째 교육자이며 가장 중요한 교사라고 하였으며, 가정이야말로 최초의 학교임을 천명하고 있다(그리스도교적 교육에 관한선언 제3항). 가정에서의 덕행교육도 물론이지만 특히 신앙교육이 어렸을 때부터 그 가정에 결핍되었었다면 그것을 다른데서 보충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청소년문제의 거의 대부분이 어른들의 문제요, 그 부모들의 잘못이 아닌가?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기는 쉽다. 그러나 아버지이고 어머니이기는 어렵다』는 말이었다. 낳기는 쉽지만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로 키우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내가 지닌 신앙이 내 삶을 이끌어나가는 원동력이라면 내 삶에 필수적(Necessary)인 것이라면, 나는 이귀중한 신앙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몰라도 내 자식들에게 만은 꼭 전수시키려 할 것이다.
그러나 내 신앙이 내 삶에 없어서는 안될 그런 것이 아니라, 없는 것 보다야 있는 것이 그래도 좀 나은, 그저 「악세서리」(Accessary)에 불과하다면, 나한테도 액세서리인데 어느 누구에게 꼭 전수할 필요성을 느끼겠는가?
누가 죽어서 천당엘 갔다. 베드로가 마중 나와 그가 영원히 살게 될 천당 12호실로 안내하였다. 도중에 9호실이 열려있어 보니까 아니 이게 무슨 변인가. 몸뚱아리는 온데간데없고 두발만 수도 없이 꽉 들어차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는 그에게 베드로가 귓속말로 『이 사람들은 신앙이 뭔지도 모르고 그저 성당에 두발로 왔다 갔다 했으니까 두발만 상을 받아 천당에 온거야!』하더라니…과연 나의신앙이 내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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