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 소피아에게.
『나는 사람도 아닌 구더기 세상에서 천덕이 사람들의 조롱거리 사람마다 나를 보고 삐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빈정댑니다』(시편22, 6)
시편을 즐겨 읽던 네가 병원 입원실에서 내게 들려준 하느님의 말씀이다. 원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단 한번뿐인 생애를 거는 것이야 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삶이 아니겠느냐고 하며 정결ㆍ가난 순명을 서원하고자 가족 곁을 훌훌 떠나버린 깜찍한 너의 용기가 대견스럽고 고맙고 예쁘고 얄미웁다.
오늘 수녀원 입원 후 두 번째 받는 네 글을 읽고 너를 만난 듯 기쁘고 반가웠단다.
짧은 시간이지만 영성적으로 너무 성숙해진 네 편지를 읽고 수련책임수녀들이 얼마나 열심히 사시는 분들인지 알 것 같구나.
오늘 같은 날이면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내게 소피아 너처럼 귀한 딸이 있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단다.
엄마가 하느님 다음으로 무서워했던 내 딸 소피아야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네게 흠이 될 것 같아 걱정스럽다.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참된 삶의 길. 내가한 평생 참된 삶의 길. 내가한 평생 추구해왔고 무엇인가 얻기 위해 아둥바둥 허우적대던 일들.
나를 얻으려고 나를 채워보려고「그리스도인의 삶」을 고의적으로 저버리고 은근슬쩍 눈 감아버린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지.
그럴 수밖에 없었노라고 치부해 버리고 나를 중심으로 합리화 시켜가며 내가 나를 용서하고…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꼴을 하고 있는 어미를 위해 기도해 주렴. 망아지처럼 뛰놀던 네가 집을 떠나서 어떻게 살까 염려하는 부모의 마음을 너는 알께야.
눈물 때문에 바늘귀를 꿰지 못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 허나 부르심에 보답하는 참된 삶을 살아야하지 않겠니 쓰임을 받는 큰 일꾼이 되어 주어야한다 소피아야. 같이 입회한 자매들과 항상 따뜻한 마음 나누어야 한다.
다음 편지를 기다려야겠구나.
언제쯤이 될지 알 수는 없지만…
하느님!
내 딸 소피아의 예쁜 마음을 끝없이 보존하게 해 주십시오. 같이 입회한 자매들과 타협하는 이기심 없는 소피아가 되게 해 주십시오. 성실하고 순수하게 어른 수녀님들께 순종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저보다 뒤지는 듯한 자매들에게 자아를 추구하는 불순한의도가 스미지 않게 해 주십시오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같은 빛을 줄 수 있는 큰 도구로 써 주십시오.
정정원<서울시 도봉구 미아3동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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