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모두 다 죽게 마련입니다. 결국 우리는 죽기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똑같이 죽는다는 운명은 오히려 용기가 됩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명예롭게 죽음을 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아내와 아이들을 노예가 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노예가 되기보다는 영광스럽게 죽음을 택합시다. 자랑스럽게 죽는 것은 곧 로마에 대항하여 승리가 될 것입니다』
적에게 정복되어 죽기보다는 자신들의 손으로 죽음을 택한 사람들, 바로 그 유명한「마사다」의 사람들이다. 이스라엘땅 사해(死海)로부터 서쪽방향으로 약 2.5마일쯤에 우뚝 서있는 천연의 요새「마싸다」는 모든 유대인들의 정신의 요람이요 지주라 할 수 있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된바 있는「마싸다」는 우리에게 있어 아직은 생경한 지역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한번쯤 그곳에 발을 디딜 수 있었던 사람들은 마싸다의 지형과 그에 얽힌 역사에 놀랄 수밖에 없다.
AD 60년대 로마가 예루살렘을 함락하자 나자렛을 중심으로 강력한 독립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막강한 군대의 로마를 상대로 한 독립운동과 전쟁은 현실적으로 성립이 안 되는 게임이었으나 마싸다는 예외였다.
당시 유대 독립운동의 지도자 엘리아잔 벤 야일장군의 인도로 헤로데왕의 요새 마싸다를 점령한 유대 애국자들과 그 가족 등 9백 70여명은 1만 5천명을 헤아리는 로마군대와 처절한 전투를 벌이게 된다. 헤로데가 자신의 왕권을 보호기 위해 천연의 지형을 이용, 구축한 이 요새는 로마군대의 거듭되는 공격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당시 10개 군단을 이끌고 마싸다를 공격하던 로마의 실바장군과 그 동료들은 난공불락의 요새 앞에 자존심을 상할 수밖에 없다. 이미 유대 전 지역을 장악한 로마군대에 있어 마싸다를 제외한 승리는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싸다를 둘러싸고 9개의 진군 캠프를 설치, 총공격에 나선 로마군대는 결국 군인과 노예들을 동원, 마싸다 옆에 똑같은 높이의 산을 쌓는 지혜를 찾는다. 아울러 불화살을 쏘아 성벽을 보호하듯 둘러싼 무성한 나무들을 태워버리는 등 사력을 다한 공격이 시작된다. 드디어 방패막이 나무들은 불에 타 버리고 성벽들은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또 하나의 마싸다가 같은 높이로 우뚝 솟아오르게 되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여건은 어느 곳에도 없었고 로마군대의 마싸다 점령은 바로 눈앞으로 다가왔다. 마지막 순간 엘리아잘 벤 야일은 역사상 가장 극적인 것으로 얘기되는 연설을 마싸다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하게 된다. 『적에게 잡혀 노예가 되기보다는 자유로운 상태로 명예롭게 죽음을 선택하자』고.
이 연설은 또 다른 선택이란 있을 수 없었던 마싸다 사람들을 영웅적인 의지로 뭉치게 했으며 죽음은 이들에게 있어 최대의 항쟁이었다. 그러나 이들은「자살은 곧 죄」인 율법에 묶이게 된다. 결국 짜낸 지혜가 제비뽑기.
제비뽑기로 선발된 10명의 마싸다 항쟁자들은 9백60여명에 달하는 그의 동료 가족들에게 그들이 선택한 영광스런 죽음을 선사한다. 다시 제비뽑기로 1명이 선발되고 그에게 9명 동료들의 목숨이 위탁된다. 마지막 남은 1명, 그는 모든 마싸다 사람들을 대신, 「자살이란 죄」를 즐거이 떠 맡고야만다.
다음날 새벽, 수개월에 걸친 혈투 끝에 로마 군대는 마싸다에 오르게 된다.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마싸다 땅을 밟은 로마군대는 성 곳곳에 잠들어있는 주검들의 환영을 받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마싸다의 입성은 로마군대에 있어 차라리 모멸이었고 그것은 결코 승리가 아니었다.
다수에 대한 소수의 저항이자 강자에 대한 약자의 저항이며 정치적, 종교적, 그리고 영적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이야기 마싸다 스토리는 마사다를 찾는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를 또 다른 차원에서 생각케 해 준다.
최근 우리의 또 한 사람의 젊은이 조성만군의 죽음은 아직도 우리의 마음을 충격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우리 모두 가까이에서 겪은 그의 죽음이 이처럼 가슴 아픈 것은 그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거두어버린, 자살의 형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더 이상 아픈 상처를 기억하긴 힘들지만 다시는 같은 상처로 아픔이 없어야한다는 점에서 조군의 자살과 관련, 교회는 분명한 입장으로 신자들의 혼돈을 정리해줄 필요가 있다.
조군 사건으로 신자들이 보다 크게 당황한 것은 그가 신자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사건직후 쇄도한 독자들의 전화문의 역시 신자가 어떻게 자살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 핵심이었다.「자살은 죄」라는 개념 속에 자라온 신자들의 초점이 조군의 죽음이 교회내적으로 어떻게 받아 들여 지는가에 모아진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논란이 이어지고 협의와 대화가 거듭되는 속에서 그는 종부성사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사도예절을 거쳐 명동을 떠나는 한 사람의 신자가 될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가 않았다. 교회와 사회에 한줄기 회오리바람을 일으킨 그는 갔지만 자살이라는 형태의 죽음은, 그 선택은,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없다는 교회의 기본입장은 여전히 지배적인 여론으로 명쾌한 해답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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