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최초의 사제이며, 최초의 주교이고, 최초의 수도자이기도한, 남경교구장 라문조 주교의 남경대목구장 주교 임명서에서 1674년 1월 4일자로 당시 교황 클레멘스 十세는 다음과 같이 명하고 있다. 「…라문조 신부를 중국의 남경대목구장 주교로 임명하는 동시에 하북성, 산서성, 산동성, 하남성, 협서성 및 고려의 서리주교직무를 겸장하기를 명하노라…」
우리나라에 대한 사목을 「고려」라는 이름으로 라문조 주교에게 맡기게 되는 연유에 대하여는 아직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1674년의 이 교황칙서는 조선교구 설정(1831년)보다 157년 前의 일이며, 임진왜란 때 지봉 이수광이 북경에 가서(1593년) 천주교서적을 접하고 온지 80여년 후이고, 교산 허균이 북경에 가서(1610년) 12단기도문을 가지고 온지 60여년 후의 일이며, 묵암 이경상(광암 이벽성조의 직계 5대 조부)公이 소현세자와 함께 심양에서 북경으로 가서(1644년~1645년) 약 6개월간 머물면서 당시 남당 천주교회의 본당 신부로 있던, 독일인 아담 샬 신부와 접촉하고 중국인 천주교신자들을 데리고 천주교 책을 가지고 귀국한지 30년 후의 일이다.
교황이 한국의 사목을 공식으로 어느 주교에게 위임하는 것은 1674년의 이조치가 처음이라고 생각하는데, 라문조 주교가 어떤 분인지 우리나라에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우리나라의 김대건 신부와 비슷한 위치의 인물로 알아들으면 될 것이다. 즉 라문조 신부는 많은 고생을 하면서 포교활동에 전념하던 전도사로서 처음에는 프란치스꼬 신부들과 함께 일한적도 있으나, 박해 때문에 감옥에도 여러 차례 갔었고, 후에는 도미니꼬회에 정식으로 입회하여 중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사제가 되었으며(1654년 7월 4일 서품), 섬 지방으로의 전도여행을 위하여 항해도 하였고, 많은 고생을 하였다.
그러나 가장 심한 고통은 1674년 1월 4일자로 주교임명을 받고도 10여년간이나 주교서품도 못 받고 교구장직무를 수행하지도 못하다가 1685년에야 겨우 중국의 광주에서 주교품을 받게 되는 비운을 겪는 중국의 최초성직자였다.
그런데 라문조 주교는 사제되기 전 즉 주교되기 전에 서양에도 다녀오는 많은 활동을 한 분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분의 주교 임명서에 「고려」가 명시되는 과정에 대하여 우리는 한번쯤 파헤쳐 볼 문제로 느껴지므로 이에 관심을 갖는 역사학도들에게 연구과제로 제시하고 싶다. 다만 오늘의 한국천주교회 창립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교회역사에 관한 것인 것만은 사실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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