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의 비유」(루가15,12~32)가 생각난다. 아버지의 상속을 가불해서 신나게 놀아나다가 돈 떨어지고 배고프니까 다시 집을 돌아왔다. 그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 밭에 나가있던 큰 아들이 돌아오다가 집 가까이 에서 음악소리와 춤추며 떠드는 소리를 듣고 하인하나를 불러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아우님이 돌아왔읍니다. 그분이 무사히 돌아오셨다고 주인께서 살진 송아지를 잡게 하셨읍니다.』하고 하인이 대답했다. 큰 아들은 화가나서 집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아버지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에 꼴도 보기 싫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서 달랬으나 그는 아버지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아버지, 저는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서 종이나 다름없이 일을 하며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한번도 없었읍니다. 그런데도 저에게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새끼 한마리 주지 않으시더니…』▼김만철씨 일가 11명이 자유의 땅, 따뜻한 조국의 품에 안겼다. 온 국민 모두가 진심으로 환영하며 앞날의 행복을 빈다. 그런데 보도에 의하면 이들에게 제공될 보상금이 5억여원, 이보다 앞서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누구는 13억여원의 보상을 받았다한다.▼여기서 이들에게 베푼 보상금에 대해서 불평하거나 말썽을 피우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지금 이 땅에 사는 어느 누구에게라도 그보다 더 많은 논을 줄테니 북한땅에 가서 살아라고 한다면 선뜻 나설 사람은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순간「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그 큰아들의 불평이 떠오름은 웬일일까. 이 땅에서 지금까지 선량하게 살아온 우리 충직한 국민들에게도 주름진 얼굴을 펼만한 한가지 선물쯤 줄 수 없을까.▼『어떤 사람에게 양 백마리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한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하자. 그 사람은 아흔아홉마리를 산에 그대로 둔채 그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않겠느냐? 그 양을 찾게 되면 그는 길을 잃지 않은 아흔 아홉마리의 양보다 오히려 그한 마리 양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마태오18,12~13).우리는 바로 이런 기분으로 김만철씨 가족들을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