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부산 형제복지원사건」「충남 연기군 양지원사건」등 최근에 터져나온 일련의 사태는「인권(人權)부재」의 현실을 절감케하는 사건들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은 이미 일반매스컴을 통해 그 실상이 소상히 파헤쳐졌고, 당국의 사후 대책 및 개선방안이 밝혀졌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개선의 소지는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인권문제와 관련돼 세인의 주목을 받은 일련의 사태들은 사회문제에서 급기야는 정치문제로 불거지면서 이 사회를 엄청난 진동의 파장으로 몰아넣었다.
결국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인간이 인간 존엄성을 스스로 망각한데서 비롯된 것으로써 인간존엄성 회복만이 유일한 궁극적인 해결 방안이 될 것이다.
수 천명의 인권을 폭행으로 짓누르면서 사리사욕을 채우고, 폭행의 결과로 살인까지 저지른 것이 죄명인 부랑인 수용소 사건은, 경찰에 의해 자행된 대학생 고문치사 사건으로 한때 그늘에 가려져 있기도 했으나 따지고 보면 이 두 사건은 구조적인 부조리ㆍ인권탄압ㆍ인권부재에 의해 발생했다는 점에서 그 궤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들은 인간존엄성을 무시하고 학대한 잔혹한 행위로 법의 심판에 앞서 국민의 노여움으로 단죄되었다는 점에서 여타사건들과는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사건에 접할 때마다 흥분하여 해당자들을 질책하고 당국의 처사를 비난하면서도 이러한 구조적인 모순에 합류해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은 없는 양 애써 피하려고 하지 않았는지 반성해봐야 할 것이다.
나는 과연 가난하고 불우한 이웃을 나와 같은 인권과 자유를 지닌 인간으로 대접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는가, 가난하고 일할 능력이 없는 걸인을 악(惡)으로 단죄하고 사회의 손실이라는 선입견으로 그들을 적당히 억압하는 일은 악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가를 반성해볼 일이다.
별다른 의식없이 단죄하는 나의 단순한 생각들이 합쳐진 사회의 통념이 상존하는 한 인권탄압 사례는 결코 종식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으로 인해 마련 중인 고문 근절 예방책과 위원회 구성은 정치문제화 되면서 어떠한 모양으로 나타날지 미지수이지만,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계기로 보건사회부는 지난 2월 4일 부랑인 수용시설에 대한 종합개선 대책을 마련, 앞으로는 억울한 수용자가 일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으며 시설운영과정에서 드러난 비리발생요인도 시정토록하겠다고 발표했다.
보사부는 이 대책에서 내무부와 협의, 부랑인에 대한 신상파악과 연고자 확인을 철저히 하고, 사회 복지 분야 전문가, 관계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수용자 입퇴원 심사 위원회」를 각 시도 및 군에 설치 부랑인의 입퇴원 적격여부를 가린다는 것이다.
보사부의 또 다른 대책은 36개 부랑인 수용시설의 실태를 조사, 이들 시설에 있는 부랑인들을 노인, 아동 ,정신질환자, 심신장애자 별로 분류, 노인은 양로원, 18세미만자는 육아원 및 고아원, 정신질환자는 요양원으로 보내는 등 전문시설에 분산 수용시키는 한편, 시설관리의 내실화를 위해 수용인원을 5백명선으로 한정하고 상담자 등 사회 복지 전문인력을 확보 배치하고 시설종사자에 대한 처우도 개선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보사부의 대책은「수용자 입퇴원심사위원회」를 구성ㆍ운영하겠다는 것 외에는 한마디로 현실성이 결여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부랑인들을 노인 아동 정신질환자 심신장애자별로 분류, 양로원 고아원 요양원으로 분산 수용하겠다는 대책은 분명 현실성이 없는 공허한 대채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양로원ㆍ고아원ㆍ요양원등은 현재도 그 시설이 태부족한 실정인데 부랑인 시설의 수용자들을 어떻게 수용시키겠다는 것인가. 이 방안이 강행된다면 오히려 기존의 양로원ㆍ고아원ㆍ요양원 시설의 부실화만 가속화시킬 뿐이다.
그리고 시설관리의 내실화를 위해 수용인원을 5백명선으로 한정하겠다는 대책 역시 미봉책에 머물 것으로 우려된다.
보사부 통계에 의하면 86년 말 현재 부랑인 수용시설은 전국36개 시설에 1만 6천 2백 25명으로 1개소당 4백 51명꼴이다. 따라서 보사부의 수용인원 5백명선 한정은 전국 평균치로 계산하면 적정수준을 이미 유지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결국 부산형제복지원과 같은 3천명이 넘는 수용인원을 다른 시설로 분산시키겠다는 대책은 미봉책이 아닐 수 없다.
일반적으로 전문가들은 수용시설의 수용인원이 적을수록 좋다는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이상적인 이론적인 방법으로 인식되어야하고, 현실적으로는 대규모 수용시설의 합리적인 운영방안을 마련하면서 신규시설은 소규모 원칙을 고수하는 이원적인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우리교회는 대소 규모의 부랑인 수용시설을 비롯, 많은 각종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운영 실태가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정부가 운영하던 대규모의 복지시설과 신규시설운영을 가톨릭에 맡겨 오고있다. 가톨릭이 비교적 욕먹지 않고 이 어려운 복지시설사업을 이끌고 나갈 수 있는 것은 수용자들과 함께 살려고 노력하는 사랑의 정신이 깊이 배어있기 떄문일 것이다.
이번 일련의 사태를 우리교회의 인권수호와 인간존엄성 수호의 노력을 재점검하는 시금석으로 활용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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