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랫만에 올려다본 하늘이었다. 시려운 찬바람에 죽은 듯 웅크리고 있는 가로수에 나뭇가지들이 갑자기 흐려진 시계안에 와 잡힌다.
왜 동공에 뜨거운 물기가 어리며 목이 메일까?
고되디 고된 2년의 회오리 바람 속에 떠밀리며 천신만고 끝에 겨우 매듭을 짖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성당으로 발길을 향하면서 많은 생각에 빠졌다.
작년에는 아들을, 올해는 딸을 도깨비같은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대학에 합격시켰는지….
제2지망은 가능성이 없어서 감히 알아보지도 않고 신문사에서 불합격이라는 말을 들었던 밤. 그 밤은 눈앞이 하얗고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으며 창문을 열어놓고 가슴을 두 손을 웅크려 쥘 수밖에 없었다.
잠든 우리 아이에게 아픔만이 산처럼 밀려와 또 엄청난 인파의 홍수 속에 가늠도 할 수 없는 지원, 논술의 잔악한 채찍을 내가 어떻게 가려줄 것인가? 정말 이 노릇을 어떻게 치를 것인가, 아니면 절인 야채처럼 풀죽어있는 저 절망 속에서 어떻게 부추겨 일으켜 지루하고 험난한 것을 인내 하며 극기해야할 필수과목(재수)에 임할 것인가…
이를데 없이 막막한 심정으로 새벽을 맞았다. 미사에 참석키위해 성당으로 가면서 지난 1년간 재수생들을 위해 바쳤던 나의 기도가 바로 내 딸의 기도가 된다고 생각하니 절로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내 모든 발길이 딸의 합격이란 영광으로 이어지는 봉헌이 되어줍시사 내 집에 오는 손님에 차 대접 하나에서 부터 접시 하나를 씻으면서도, 숟가락을 놓으면서도, 밥을 하면서도 기구했는데….
가슴에 비처럼 내리는 눈물을 느끼며 풍뎅이처럼 제자리를 맴 돌다 영성체의 줄 앞에 선 나는 그래도 기도드릴 수 밖에 없었다.
이기력없는 제 발걸음을 봉헌하오니 이 아픔들이 딸에게 승화되는 삶의 밑거름이 되게 해 주십사고….
그런데 집에 돌아와 누워있던 중 딸 친구가 알려준 제2지망 합격의 낭보!
아, 얼마나 큰 하느님의 선물이었는가.
아들을 불들고 딸을 불들고 뛰다가 무릎을 꿇었다.
미사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3년의 구일기도에 응답을 성모님께 들으며 나는 내일의 내 소명을 들었다.
『사랑하는 내 딸아 괴로워하는 자를 향하여 뛰어라』두렵고 떨리는 마음.
함께 해줄 하느님과 어머니 성모님이 계심을 뼈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아픈 자들을 위해 늘 기도하리라는 마음도…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