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을 걷어 내고 이윽고 차례도 끝이난다.
나는 제사상의 한쪽에 곱게 장식된 떡을 바라본다.
아내는 찹쌀가루를 작게 빚어 전을 부치고, 그 동글납작한 떡위에 국화잎으로 장식하기를 좋아 한다.
국화 한 잎이 주는 멋으로는 내 어린시절의 창호지문도 뺴 놓을 수가 없다.
이리 저리 구멍을 떼우며 버티다가 명절이 오면 문종이를 사서 바르게 되는데, 어머님은 국화잎을 문고리 양편에 끼워 바르시는것을 잊지 않으셨다.
어느 민족인들 멋을 모르리오마는, 우리 민족의 멋을 내는 양은 사뭇 품격이 있었다.
담장 안에 심는 나무만해도 매화는 별채나 사랑채에 심어 고고함을 곁에 두고자했으며, 감나무는 주로 앞뜰에 심어 초겨울 시퍼런 빛 사이로 두어개 남은 잎새나 홍시의 기막힌 실루엣을 창호지에 담으셨다.
조선시대의 멋을 시각ㆍ청각ㆍ후각 셋으로 가를 때, 시각적인 멋 중에서 의복이갖는 위치도 대단하다.
오늘같은 설날만 해도, 묵향 스민 두루마기며 떄떄옷이며 설빔의 상상이 어렵지않다.
그런데 올해의 새뱃군엔 분명 변화가 있었다.
예년 같으면 그중 나온 양복으로 골라 입고 넥타이도 갖추고 의젓하게 나타났을 조카들이 한결같이 방한복 차림새 였다.
『무슨 등산이나 조깅도 아니고-오라, 오리털 파카로구나. 이제 오리를 설날까지 모시고 다니누나…』
오리털의 수요가 급증하여 굉장한 양을 수입한다고 한다.
그러나 온당한 짓일까?
도날드ㆍ덕 친구가 아니니 특선만화에 나올리도 없고, 산 오리가 아니니 금강산댐 하류에라도 키울리는 없을텐데.
이런 저런 망상으로 뜨악한 내 앞에 웬 아기오리 한마리가 다가 앉는다. 자세히 보니 치마 저고리도 벗어 던진 국민학교 일학련짜리 작은 딸이, 고리 달린 바지를 발바닥에 꿰어차고 분명 오리의 앞가슴 털은 아닌것 같은 파카속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는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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