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는 전에 노골적으로 표면화하지 않았던 몇 가지 고통스러운 문제들이 느닷없이 표출되어 버렸다. 그것이 이른바「고문치사」와「복지원」문제이다.
한편으로는 마침 북한에서 김만철씨 가족이 탈출해 나와 서울에서 연일 대환영을 받고 있다. 김씨 가족의 망명과 남한동포들의 품에 안긴 사실은 확실히 경사스러운 일이다. 사상의 자유도 인간의 기본권에 속한다고는 하지만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가톨릭교회가 처음부터 인류의 재앙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유물론과 물질주의, 전체주의와 독재폭력의 변증법 표방 등이 모두 인간본성과 자연법에 어긋나는 것이다. 최근에 러시아에서 지방 당조직의 간부를 선출하면서 공산당 역사상 처음으로 복수후보에 대한 비밀투표방법을 사용했다고 해서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이제까지 공산주의 사이에서는 으례히 거수 형식에 의한 만장일치 선거제를 추진해 왔다는 것이다. 어처구니 없을만큼 기계적인 후진성의 작태인 것이다. 특히 북한 공산주의의 경직성은 그 세계권에서도 가장 심한 상태이므로 그곳에서 탈출해 나온 김씨 일가의 용기는 참으로 가상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김씨 일가에 대한 서울시민의 환영 열기는 요즈음 다른 한편으로 미묘한 작용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즉 남한 사회에서 최근에 일반 국민의 분노와 고통의 신음을 자아낸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및 공산주의 세계에 있는 일종의 수용소들 같은 복지원-양지원·성지원-등 부랑자 수용소에서 많은 인명이 죽음을 당했고 강제노동의 혹사에 시달리는 인권유린 사태가 있다는 비극이 김씨 일가 환영열기로 인해 은연중 덮혀져 가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특히 김씨일가 환영무드는 정부당국이 의도하는바에 따라 TV화면을 통해 과다하게 방영되는 것 같고 이 현상은 앞으로도 아마 오래 더 계속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김씨 일가의 망명은 물론 명백한 사실이지만 행여라도 이 환영 열기가 상대적으로 「고문치사」ㆍ「복지원사건」등을 흐지부지 덮어버리려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된다면 이것은 실로 또 다른 심각한 불행의 소지가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가 북한 사회보다 낫다고 하는 것은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와 표면상 화려한 물질생활에 근거하는 판단이다. 이뿐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에는 확실히 아직 무언가 개선할 수도 있고 민주주의를 성취할 수도 있는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국민이 희망과 긍지를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베트남이 공산주의로 통일은 되었다고 하지만 그 다음에 그 사회에서는 어떤 개선이나 자유화, 인간 본성이 고양될 가능성을 기대하기가 지극히 힘들게 되었다는 뒷소식을 듣는다. 그렇다면 민족통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다음에 사람들이 누리는 삶의 내용과 질은 무엇이냐하는 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어떤 형태의 통일도 좋다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으며 반드시 민주적인 통일이 이룩되어야 한다.
한국 민족도 빨리 통일을 성취해야 한다. 그러나 자유 민주주의를 한다고 하면서 실제로 독재와 고문과 인권유린과 특권층의 축재와 빈부격차의 심화와 이런 것들이 만연해지면 결국 중국과 쿠바와 베트남에서처럼 공산화 통일이 초래되고 만다. 이것이 현대 세계사의 교훈이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이 대한민국에서 참다운 민주주의의 사회, 자유와 인권 존엄과 평화가 명실상부하게 보장되는 사회를 성취해야겠다는 열망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민주화 사명의 대열에 오늘날 그리스도 교회는 참여하고 있다. 그 이유는 민주화가 내용적으로 곧 그리스도 복음화에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교회는 어떤 정당 활동 차원에서 정략적으로 행동하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성서의 복음정신과 교회의 구원사업 차원에서 원천적이고 원리적인 선에서 정의와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자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원래 세상 모든 사람의 구원을 원하신다.(디모테오Ⅰ2,4) 우리는 성서에서 늘 신자들이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고 누룩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읽는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의 개념으로서는「하느님 백성」자체가 교회이다. 때때로 이른바 정·교 분리(政·敎分離) 원칙이라는 것을 거론하면서 교회의 사회참여를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성서 내용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무사안일에 집착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데나리온」한 닢에 그려진 카이사르의 초상, 그것은 세속 권력자의 우야할 비본질적 부분이지만 그밖의 온 세상일이 하느님의 진리와 질서에 속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가톨릭 교회의 제2차 카티깐공의회는 『교회가 사회 한복판에 참여해야 한다. 사회적 연대책임은 중요하고 모범을 보여야한다』(사목헌장89ㆍ30ㆍ72)고 선언했다. 이밖에 가톨릭교회의 다른 교서들은『세계 개혁 활동은 곧 복음의 선포다』『현세질서의 쇄신은 평신도의 의무다』라고 제시하였다.
모쪼록 남한의 민주화가 더 많은 김씨 일가의 망명을 받아 들여야하고 끝내 자유와 인간존엄과 평화를 바탕으로 민족통일의 날을 앞당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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