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그 필요성이 거론돼온 한국교회의 새로운 공동지도서가 「한국천주교사목지침서」라는 잠정명칭으로 시안(試案)과정에서 첫선을 보였다. 비록 일선 사목자들에 한해 의견을 수렴하는 아쉬움은 있으나 주교회의가 사도좌의 인준을 받아 법적효력이 발생하기 이전에 다양한 의견을 듣기로 한 것은 참으로 잘한 선택이다.
주교회의가 시안을 공개하면서 밝힌바와 같이「한국천주교 사목지침서」에 수록되는 지침은 곧 지역(한국)교회법이 될 것이므로 다양한 의견수렴이야말로 보다나은 지역 교회법을 입법하는데 있어 최선의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일종의 입법예고와 같은 성격의 지침서 시안이 주교회의에서 공개된 것은 일찍이 유래가 없었던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역교회법의 제정은 온전히 주교회의에 일임된 사안이기에 지침서 시안의 공개여부는 주교회의의 판단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교회의가 검토 수정과정을 거친 지침서시안을 굳이 공개, 의견을 수렴키로 한 것은 사안자체가 그만큼 중대함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새로운 사목지침서 마련에 의견제시를 부여받은 사목자들은 시안 내용을 면밀히 검토, 최선을 다하여 성의 있는 의견을 제시하여야할 것이다.
지역교회가 공동으로 사목지침서를 발간하는 것은 전체교회에 공통되는 일반교회법(보편법)에서 구체적으로 명시돼있지 않은부분에 대해 그지역실정에 맞게지역교회법을 제정토록 돼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지역 교회법이 될 「한국천주교 사목지침서」발간을 추진하고 있는것은 이 같은 배경때문이며, 1932년이래 새로운 사목지침서가 없어 그 필요성이 오래전부터 대두돼 왔었다.
1932년에 발간된 사목지침서는 그동안 제2차「바티칸」공의회, 그리고 80년대에 개정 반포된 새 교회법전의 내용과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상당수 포함돼 있어 현재는 거의 사문화된 상태여서 새로운 사목지침서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8ㆍ15해방을 맞으면서 교세가 남북으로 갈라지고, 이어 6ㆍ25동란을 겪었고 그 후 교계제도(敎階制度)설정, 제2차「바티칸」공의회를 거치는 등 변혁의 와중 속에서 새로운 사목지침서 발간추진은 8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논의됐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제2차「바티칸」공의회의 정신과 각종문헌은 곧 전체교회의 새로운 지침으로서 이를 수용하는 것이 당면과제였으며 80년대에 들어서 새 교회법전이 제정 반포됨으로써 비로소 새로운 사목지침서 추진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 추진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사목지침서는 여섯 번째 사목지침서이다. 최초의 지침서는「장주교윤시제우서」(1857년)이며, 이어 1887년 블랑 백주교가 간행한「한국교회의 법규」는 단행본으로 발간된 첫 지도서이다.
이어 1912년「대구교구지도서」, 1922년「서울교구지도서」가 각각 발간됐으며, 1932년 간행된 현행 지도서는 1931년 조선교구 설정 1백주년을 기념하여 당시 한국의 교구장 5명이 한국공의회를 소집, 공동으로 간행을 결의, 「공동지도서」라는 명칭이 부여됐다.
따라서 이번에 추진하고 있는 사목지침서는 여러 교구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공동지도서로서는 1932년 공동지도서에 이어 두 번째 공동지도서인 셈이다.
또한 새 공동지도서는 한국인이 주체가 되어 편찬하는 최초의 지도서라는데 큰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의 모든 지도서는 외국인선교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새 공동지도서는 교계설정과 함께 자립교회로 성장해 온 한국교회의 위상(位相)을 확고히 하는 중대한 작업이 될 것이다.
이번 지침서의 시안 가운데는 예비기간(적어도 6개월) 결혼연령(남 18세, 여 16세) 대부모 자격(14세 이상) 견진성사연령(12세 이상)등이 규정돼 있으며, 영성체회수(하루 2번) 혼인공시(교적 및 호적등본 확인으로 대체가능) 등은 근자에 교황청 지침이나 주교회의 의결로 시행되고 있는 내용도 수록돼있다.
그러나 영세 후 적어도 5년은 넘어야 신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는「신학생 선발에 관한 규정」은 현행 3년을 강화한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그런데 단식재와 금육재 규정은 교회법에 명시된 조항만 있고 한국교회의 예외적이 적용 규정은 삽입돼있어 일선 사목자들의 의견수합 과정 중 수정보다는 보완해야할 내용들이 상당수 개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교회의도 이러한 측면서『대부분은 그래도 좋은 지침으로 받아들여질 것으로 믿으나 더 많은 분야의 지침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보다 나은「한축천주교 사목지침서」발간은 이제 일선 사목자들의 성실한 의견재진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시 한 번 일선 사목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촉구하는 바이다. 그리고 기왕에 공개하는 시안이라면 그 의견수렴의 대상을 일선 사목자들에게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시안 내용을 교회매스컴에 게재, 모든 교회구성원들에게 의견 개진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인 입법 예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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