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어느 차가운 겨울아침 마이애미를 향하여 워싱턴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떠나자마자 곧바로 고장을 일으켜 활주로 옆에 있는 포토맥강 속에 처박히고 말았다. 발 빠른 방송중계차는 그 현장에 렌즈를 맞추었고 눈 깜짝할 사이에 헬리콥터들은 밧줄이 달린 바구니를 허우적거리는 승객들에게 내리고 한사람씩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죽음의 길목에서 아슬아슬하게 구조되는 사람들을 TV로 지켜보며 안도의 한숨과 박수를 쳐댔다. 한사람이라도 더 구조하기위해 바구니는 다급히 움직였다.
또 다시 바구니가 강물에 던져졌다. 이번엔 어느 중년신자가 그 바구니를 잡았다. 그런데 웬일인가! 초분을 다루는 생사의 갈림길이건만 이 신사는 바구니를 잡고 좌우를 두리번거리지 않는가. 관중들은 어서 빨리 타고 올라오라고 외치건만 이 신사는 한손으로 바구니를 잡고 다른 한손으로 헤엄을 쳐 허우적거리는 한 젊은 여인에게 다가가더니 그 연인을 바구니에 밀어 넣지 않는가! 박수를 받으며 그 여인은 구조되고 다시 내려진 바구니는 용케도 그 신사가 있던 곳으로 내려졌다 그러나 그 바구니를 잡아야 할 신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짧은 사이에 깊은 강물 속으로 빠져들고 만 것이다. 빈 바구니는 오랜 동안 그 신사를 기다렸건만 그는 영원히 나타나지 않았고 차가운 얼음 조각만 끌어 올리고는 구조작업은 끝났다. 그리고 수십 명의 생명을 앗아간 강물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유유히 흘렀다. 다음 날 모든 신문들은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였고 무엇보다 의문의 그 신사에 대한 자세한 소개와 감격의 글들로 주목을 끌었다.
그 신사는 남쪽지방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잡화상을 하는 소시민이요 종교도 없으며 학력도 변변찮은, 요즘말로「보통사람」이었다. 레이건 대통령도 감격한 나머지 흥분된 어조로 특별담화문을 발표했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미국은 위대합니다. 남은 살리고 자신은 죽어간 어제의 그 신사가 우리가운데 있는 한 미국은 영원히 위대한 국가로 살아남을 것입니다』사실 미국은 심한 병을 앓고 있는 나라다. 마약ㆍ살인ㆍ흑백문제 등, 구석구석 앓고 있다. 그러면서도 강대국으로 남아있는 이유들 중의 하나는 국민 저변에 깔린「인간애」정신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웃을 안다. 적어도 이웃을 방해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냘픈 한 여인에게 먼저 생명의 바구니를 넘겨준 그 신사의 정신이 그 한 예이다.
이웃 사랑.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다. 「벗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며 몸소 죽음으로 모범을 보여 주신 그리스도는 이웃 사랑이 곧 하늘 사랑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웃은 더 이상 남이 아니라 나의 분신이요, 또 하나의 나 자신이라고 말할 수 없을까!
오늘의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청부지 국민학교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은 말은 생존경쟁, 곧 내가 살기위하여 남을 꺾어야 하다는 것, 그리고 삶은 곧 전쟁이라 가르치고 배워왔다. 거기에다 적군을 죽여야 아군이 산다는 군사 문화가 긴 세월 우리사회를 철저하게 지배해 왔다. 하늘이 베푼 은혜의 생명들이 어찌하여 이기고 지는 싸움터의 싸움팻군으로 전락해야 하는가!
79년 10월 대통령시해 사건을 자정뉴스로 듣고 난 나는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밤새 로마 시내를 돌아다니며『이제 독재는 끝났습니다. 인간 말살의 시대는 끝났습니다』라고 외쳐댔다. 사건이야 슬프기 그지없지만(김 추기경님과 위령미사를 봉헌하였다)사람이 사람 꼴을 할 수 없게 했던 독재 정치가 그토록 우리민족의 정신을 황폐케 했기에 비비꼬여진 창자에서 터져 나온 소리인지도 모른다. 그러고도 모자라서인지 또다시 7년간의 어두운 시대를 전율해왔고 국민들은 해결되어야만 될 문제들로 병을 앓고 있다.
우리 교회와 민족의 공동과제는 이웃에게 몸과 마음을 돌리는 일이다. 특히 소외된 계층의 이웃에게 사람답게 살게 해주는「인간애」정신이다. 위아래를 살피는 데에는 세계 최고의 눈을 가진 민족으로부터 좌우를 바라보며 동반하고 공생하는 민족으로 다시 태어나야한다.
옆에서 허우적거리는 힘 빠진 여인에게 생명선의 바구니를 넘겨준 이름 모를 그 신사의 인간애를 우리들 심장에 심어야한다. 며칠 전 경제인 연합회의 초청강사로 온 재일교포실업가 손시영(바울로)씨는『세계가 살아남을 길은 단 한가지뿐입니다. 그것은 바로 공생입니다.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말하며 최근에는 자기회사의 회장직을 포기하고「공생회」를 조직하여 세계를 떠돌아다니면서 기업가들에게는 공생경영을, 시민들에게는 공생정신을 심고 있단다. 남은여생을 공생만 외치다가 죽겠단다.
이웃사랑과 공생정신.
무엇보다 우리 교회가 앞장서야할 사명이다. 더 이상 내 영혼구원을 위하여가 아니라 이웃의 구원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언제 자기구원을 위해 살고 죽었던가! 더 이상 우리사회를 아귀다툼의 싸움터로 내버려 둘 수 없다. 생존경쟁이니 싸움터니 그따위 말은 아예 하지도 말자. 오히려『너는 나요 나는 너라』고 외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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