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9월 마지막 주간의 어느날, 나는 교우들과 함께 국군수도통합병원의 중환자실에서 간암으로 투병하고 있는 임종률 프란치스꼬 상사의 병문안을 갔다.
그는 처음에는 황달, 간경화 증세로 입원했다가 최종진단은 간암으로 판정된 33세의 젊디 젊은 나이였다.
살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문자 그대로 피골이 상접한 임프란치스꼬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애써 태연한척 그에게 마지막 준비를 다하고 있느냐고 물어 봤다. 그는『묵주기도 5백단을 바치고 천주 품에 들기를 원했는데 오늘로 5백단을 다바치게 되었읍니다. 모든 것이 주님이 주님의 은총과 성모님의 보살핌입니다』라고 조용히 대답했다. 그의 손에는 손때가 묻어 광채나는 묵주가 꼭쥐여져 있었다.
옆에 있던 그의 부인이 전하기를『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남에게 도움을 준일이 별로 없었소. 그러니 내가 죽기직전에 두눈을 뽑아서 가난하고 불쌍한 앞못보는 이들에게 광명을 찾아주시오. 그리고 내 콩팥도, 다른 기관도 쓸모가 있다면 불쌍한 사람에게 넣어주시오』하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그의 마지막 모습은 한마디로 고요와 평온이었다. 경건하다 못해 거룩하기까지한 모습이었다. 그는 육신의 죽음이 결국 죽음으로 끝나는것이 아니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위한 삶의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그 순간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이 세상 누구보다도 더 평온하게 잔잔한 미소까지 띠며 고통을 조금도 내보이지 않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가 영면한지 하루가 지난후 영안실에는 고인의 헌신적인 나눔으로 아들이 광명을 찾았다는 기쁜 소식을 가지고 한 사람이 찾아와 수없이 고인에게 감사를 표현했다.
33년간의 짧은 생애를 마치면서 창창하게 남은 生에 대한 애착과 어린 자녀와 부인을 두고가는 아픔이 있으련만, 피와 살이 마르고 간장이 굳어 썩어가는 고통을 신음으로 나타낼 수도 있으련만, 더 살고 싶다 나를 꼭 살려달라고 절규할 수도 있으련만, 아무 미련없이 자신을 부르시는 천주의 뜻에 순명하며 육신까지도 송두리째 봉헌하면서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선 그의 모습에는 죽음이 아닌 영원한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가 투사되는 것이었다.
그의 죽음을 통하여 천주님의 확실한 현존과, 사랑 자체이신 당신의 모상을 우리 인간에게 심어주신 사실을 재인식하며, 마지막 목적지까지 갔을때 후회와 미련없이 저렇게 평온하게 천주품에 안길수 있는 삶을 내가 살아왔던가, 과연 항상 깨어있는 삶을 살고 있었는가 하는 회한의 반성이 나의 깊은 곳에서 울려나옴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과연 영원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임상사가 보여준 해탈의 모습을 내가 내 이웃에게 보여줄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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