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 김환기의「까페」라는 수필 가운데 다음과 같은 귀절이 있다.
『「무우랑 아까페」라는 생활도구가 있다. 까페 알을 갈아서 가루로 만드는 일종의 맷돌이다. 생철통이나 봉지에 넣어서 파는 것도 있으나 파리에서는 이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모두들 알까페를 사다가 제 집에서 갈아서 먹는다. 까페를 가는 무우랑도 가지가지가 있어서 전기 무우랑이면 편리하다. 그러나 무릎위에 놓거나 끼고 손으로 달달 가는 이 고풍한 무우랑을 나는 사랑한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 무우랑을 닮은 분이 있다.
이태인가 전에 그 H선생님이 세뱃돈 주시던 모습은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다.
우리가 선생님댁을 방문했을 때는 우리 가족말고도, 조카인듯 싶은 대학생이 먼저 와 있었다. 그가 마악 세배를 끝낸 모양으로 선생님은 당신의 조카에게 어디서 바꾸셨는지 빳빳한 천원권 지페 두장을 주시었다.
그리고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번쩍이는 백원짜리 동전을, 그것도 연령에 따라 개수가 다르게 세어서 주시었다.
국민학생인 큰 아이는 세뱃돈이라면 천원짜리 지페로 받는 것에 익숙해 있는 터라, 잠시 신기한듯 손바닥 안의 동전을 들여다보고는 제 동생과 함께 씨익 웃는 것이었다. 중고생이면 적어도 오천원, 그리고 대학생쯤이면 만원권 한 장은 기대하는 것이 요즘의 아이들이고, 취학 전의 아동들마저 일이 천원을 예사로 받아 주머니에 쑤셔넣는 마당에-나는 저으기 놀라고, 한편으로는 선생님댁 자녀들에게 주리라던 지갑속의 만원권이(그것도 분명히 볼품없이 구겨졌을 쓰다 남은 돈이)부끄러웠다.
생각하니 나는 전기 무우랑 임에 틀림없다. 나의 세뱃돈이란 받는 아이의 나이는 감안하지도 않고 그 아이 부모와의 친분관계나 내 주머니 사정에 따라서 터무니없는 가격은 아니었던가?
애정어린 마음의 표시가 아니라, 어른식의 경제관념에 편승한 무슨 공과금으로나 착각한 것은 아니었던가? 나는 그때 결코 전기 무랑이 되지는 말자고 다짐했으면서도, 잘 지키지 않으니 웬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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