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를 맞아 야외에 놀러가고 싶은 마음을 떨쳐버리고 전주 치명자산으로 성지순례를 떠났다 버스를 타고가다 쏟아지는 잠을 떨치고 문득 눈을 뜨니 앞에 펼쳐진 들판엔 벌써 군데군데 보리머리가 누렇게 물결치고 있고, 함지박에 새참을 머리에 인 조촐한 아낙네의 욕심 없는 낯빛에 어린 시절에 떠나온 고향의 품에 안기는 듯한 편안한마음이었다.
일행 뒤를 따라 몇 걸음 걷다보니 천호공소 순교자들 무덤 앞에 다다랐다. 그곳에 조촐히 노천미사를 드리고 신부님으로부터 교우촌의 내역과 성손선지ㆍ정문호ㆍ한원서 등 세성인과 그이 10명의 무명 순교자에 대한 말씀과 그 선조순교자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 후손들의 할일에 대해 강론말씀을 듣는 동안 훌륭하신 내 선조들의 많은 보물들을 가까이에서 찾지 아니하고 쉽게 외국성지만이 가장 권위 있는 것인 양 생각했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오후에는 치명자산으로 향했는데 급경사진 비탈길을 굽이도니 산모퉁이에「남을 네 몸 같이」라고 쓰여진 바위돌이 보이고 여기서부터 가파른 3백m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었다. 돌무더기위에 새워진 14처를 지나 정상에 오르니 산정에는 이누갈다 유요한 동정부부의 묘가 있었고 그곳에서 묵상하며 짤막하게 간절한 기도를 드린 다음 산을 내려왔다.
오르는 길은 매우 힘이 들었지만 내려오는 길은 서늘한 바람을 맞으면서 여유가 있었다. 우리 신앙도 오르는 길은 힘들고 고되더라고 예수님의 뜻 안에 오른 다음엔 이렇듯 여유 있는 평화로움을 맛볼 수 있으리라고 이번 성지순례에서 깊이 깨닫게 됐다.
한글라라<경기도안양시비산동삼호 ART2동4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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