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신문지상에서「춘투(春鬪)」라는 말을 보게된다. 춘궁기(보리고개)라는 말은 익히 들어온 터이지만 춘투라는 말은 아무래도 생소한 말임에 틀림없다. 아마도 이 말은 봄철이 되면 야당이나 재야 세력 그리고 학생들이 정부 여당을 상대로 벌이는 투쟁을 가리키는 말인 듯하다. 매년 봄철 개학기를 맞으면 학생들이 술렁거리고 각종 시위와 외침이 교정을 뒤덮고 불쌍한 젊은 경찰들이 학원 주위에 바리케이트를 쌓고 대치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그 영향이 사회ㆍ경제ㆍ정계에 여러 면으로 파급되어 온누리가 걱정과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특히 학원에 몸을 담고 있는 우리들이 겪고 있는 나날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시위를 벌이는 과격한 학생들의 살벌한 모습, 눈코 뜰 사이 없이 퍼붓는 최루탄 가스를 마시면서 학생들을 붙들고 타이르기도 하고 통사정도 하고 만류도 해보지만 별 효과가 없다. 마음만 태우고 속수무책으로 하루하루를 지내야 하는 정신적 고통은 이루 헤아릴 길이 없다. 더구나 과격한 시위나 충돌로 인하여 희생자가 났을 경우에는 정말 몸둘 바를 모를 심정에 사로 잡힌다.
왜 우리 학원이 이렇게 되었는가? 왜 우리 학생들은 저모양이 되고 교수는 이렇게도 아무 짓도 못하는 무능한 방관자처럼 될 수밖에 없는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슴이 메어질 듯하다. 지난 아시안 게임때만 해도 그렇다. 20여일 동안이나 교문을 철통같이 막고 교정에는 학생 하나 얼씬거리지 못하게 학교 나서, 교정을 혼자 가야하는 나의 심정은 정말 메어지는 듯하였다.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의 비통한 현실을 한탄도 하고 하느님께 기도를 울린 일이 있다.
학생ㆍ시민ㆍ교수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치러야 할 국제적 행사를 이렇게 해야만 하지않을 수 없었던 우리의 현실은 참으로 마음 아프지 않을 수 없다.
일부 사회인들은 우리 교육을 저 모양으로 내버려 두고 있느냐고. 물론 우리의 능력부족도 통감하고 그 책임감도 깊이 느낀다. 그러나 오늘날 학생들의 부르짖음과 운동방향은 교육적 차원을 훨씬 넘어선 정치적ㆍ경제적 심지어는 위험천만한 이데올로기의 문제들까지 내세우는 일도 있다. 한마디로 오늘날 학생문제는 국가적 또는 대 정치적 차원에서만이 해결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임을 아는 이는 다 공감하리라 믿는다. 또 그 시위의 양상과 부르짖는 내용도 점점 더 과격하고 심각해지고 우리 국가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만한 문제까지도 일부 발견된다. 그 원인이야 어떻든 정말 심각한 양상으로 변모되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고 우리 몇사람의 힘만으로 도저히 어쩔수 없는 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교수는 오늘의 현실을 이렇게 비유한다. 큰 강의 상류에 쌓아둔 봇물이 터져 흘러내려와서 사방으로 침투되어 갖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봇물을 막으려하지 않고 아래 쪽에서만 이러쿵 저러쿵 피해를 막아보려고 하니 큰 본 해결책은 나오지 아니하고 기껏해야 미봉책 밖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이대로 나가다가는 온 누리가 홍수에 휩쓸릴 수도 있는 위험도 다분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상류의 봇물을 막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함의 개헌에 의한 민주화의 대도를 이루는데 온 겨레가 힘을 합해야 하겠다는 것은 아무도 이의(異意)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봇물을 막는 일에 여야는 각기 자기편에만 유리한 방향으로 일을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이른바 권력구조의 문제가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는 것도 다 아는 사실이다.
이런 근본문제는 물론 국회나 헌특, 또는 여야정치인들이 해결해야 할 일차적 과제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도 지금 현실로는 그 해결의 길이 막연하고 암담하기만 하다. 나같은 정치의 문외한까지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답답하다 못해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해보는 소이도 거기에 있다.
첫째, 여야 정치인들을 비롯한 모든 이는 자기 손에있는 권력이나 재력이나 능력의 소유자가 아니요, 오직「관리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꺠달아야 한다는 점이다. 자기자 가지고있는 것은 모두 하느님, 곧 하느님이 창조하신 국민 모두의 것이며 위정자는 모두 그 선량한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뿌리박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식이 없이 자기 손아귀에 들어온 것은 마치 자기의 완전 소유물처럼 여기고 제멋대로 남용하고, 지키고, 빼앗으려는 데서 모든 비극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 다같이 성찰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헌법개정의 최대 문제점은 그야말로 사심이 없는 사람들의 의견을 집약해서 결정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말씀하신대로 정말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오직 하느님의 양심에 따라서만 살아온 각 계층의 의견을 집약해서 국민과 여야 당사자들에게 방향 제시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헌법의 개정은 물론 국회의 소관이겠지만 그 중요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 각계 각층의 대표자들의 의견을 여러모로 수렴해서 그 지침을 삼아야한다는 말이다.
정말로 자유롭게 사심없는 의견을 개진시켜서 만장일치 또는 다수결로 집약하는 어떤 특별모임을 가지고 문제를 몇날 며칠을 두고라도 짜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문제는 어떤 사람이 대표가 되며, 어떤 방식을 사람을 뽑아서 그런 모임을 갖느냐 하는 구체적 절차가 어려운 것이다. 그 한 방법으로는 종교ㆍ문화ㆍ학계ㆍ법조계ㆍ언론계ㆍ 경제계 등에서 정치와 관련없이 순수하게 지내온 인사 중에서 정말 애국 애족심이 투철한 분들을 추천받든지, 아니면 여야가 공인할 수 있는 권위있는 여론조사 등을 통해서 최선의 방식을 도출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른바「춘투」를 앞두고 우리 현실을 너무나 가슴 아파하는 나머지, 소견의 일단을 말해 보았을 뿐이다. 어떻게든 우리의 최선을 다해 본다면, 하느님은 우리에게 밝은 빛을 주리라 믿는다. 하느님은 언제나 시련을 통해서 우리를 더욱 꺠우쳐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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