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사에서 봉독된 복음은 마태오 5,38~48에 나오는, 누가 네 뺨을 치면 다른 쪽 뺨을 내주고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을, 5리를 가자면 10리를 가주라는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말씀이었다.
뒤이은 강론에서 신부님은 남에게 입은 피해를 그대로 갚고야마는「 同態復讐」에서 벗어난 예수님의 사랑이야말로 실로 혁명적인 것이라고 강조하셨다.
그리스도인의 생활 지표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말이요, 비신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쓰이는 구절이다.
그러나 우리 교회가 그리스도의 이러한 가르침을 과연 어느 정도나 실천하고 있을까 하는데 생각이 미치면 창피해지고, 섬찟한 자책감마저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급증하는 인구에 비례하여 도시 지역에서는 장엄하고 화려한 치장을 한 성당건물이 다투어 세워지고 있는데 반해, 지방 산간벽지의 교회들은 아직도 궁핍과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도시와 농촌, 부자와 빈자의 대조가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는 場이어야 할 교회 내부에서도 그대로 투영되는 현실은 부끄러워 해야 할 자화상임에 틀림없다.
지난해 우리 성당에도 태백지구 광산촌교회와 수몰지역 성당에서 원조를 요청하러 왔었다. 비참한 현실들이 낱낱이 전달되는 가운데 2차헌금이 그들을 위해 바쳐졌다.
그러나 헌금만하면 그뿐, 그들의 참상에 대한 교우의 무관심은 역력히 내 눈에 비쳐졌었다. 모든 교회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한몸이요 한 형제인데, 어찌 이런 무관심과 괴리 현상이 깊어만 가는 것인가?
도시의 부유한 교회가 벽지, 특수지역의 가난한 형제교회를 위해 간헐적이 아닌 진정한 연대감을 지니고 항구적으로 형제애를 보일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볼 수는 없을까?
먼 산간에서 신부님들이 도움을 요청하러 오시고, 광부 형제들이 도시 교회에 구걸(?)에 가까운 호소를 더 이상하지 않아도 되도록 교회는 사랑을 조직안에서 제도화해 주기를 바란다.
도시 교구에는 만여명이 넘는 교회도 많고, 재정 또한 넉넉할 터이다. 로마박해시대에 까따꼼바에서 신앙의 초석을 닦았던 믿음의 선배들의 실천을 본받아 우리 교회가 나눔과 이웃사랑으로 충만한 교회가 되도록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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