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누구나 군복무를 하게된다. 그렇기에 평범한 일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처음 겪는 일인지라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다. 더구나 사제로서 군에 입대하는 경우란 더욱 특별하고 많은 의미를 갖는다.
나의 군종신부시절, 보병학교에서 받던 훈련중의 어떤하루는 잊을 수 없다. 그 무상함이 서러울 정도로 화창하던 어느날, 산들산들 부는 바람을 친구삼아 걷는 길은 얼핏, 옛날 신학교의 등반대회를 연상케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야말로, 구름에 달가듯이 앞장서 행군대열을 인도하는 조교를 원망하면서 넘어가는 유격행군이 아니던가. 옷이 온통 땀으로 젖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고개를 숙이면 철모밑으로 낙수물 쏫아지듯 땀이 흘렀다. 그중에서도 가장 참기어려운것은 갈증이었고 내 머리속은 온통 시원한 맥주 한잔 생각으로 가득찼었다. 더도말도 딱 한잔 쭈욱 들이키는 상상을 얼마나했는지...
그뒤 군종신부시절을 뒤로하고 봉천1동 본당신부로 변화된 삶을 시작하던 추운 어느날이었다. 닥지닥지 판자집이 들어선 산동네에 병자봉성체를 막 마쳤을때 그곳 몇몇 아주머니들의 예정에도 없던 초청을 받았다. 내 고물승용차 앞을 가로막고 긴히 드릴말씀이 있다하여 구멍가게안의 조그만 방으로 납치(?)되었던것이다. 대여섯명 들어서니 꽉차는 방에는 칠 벗겨진 소반위에 먼지앉은 맥주한병과 기대와 송구스러움으로 가득찬 주름진 얼굴과 소박한 눈망울 그리고 그들의 목마름이 있었다. 이 추운날씨에 그들이 대접하는 차디찬 맥주한병은 유격행군중 상상했던 시원한 맥주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목마름을 해소하고자는 열망에 있어서는 그것과 같았다.
기꺼이 받아마신 맥주 한잔은 돌같이 굳었던 내 심장을 살심장으로 바꾸어 놓았고 아껴가며 조금씩 나누어마시는 그 맥주는 마치 주님이 성혈처럼 우리를 일치시켰으며 이야기에 주님의 사랑을 담아 나누는 우리는 더이상 목마르지 않았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것입니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것입니다』(요한4,14)
그렇다! 우리는 또다시 목마를 맥주를 마신것이 아니라,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주님의 생명수를 마신것이다. 찬바람 매서운 거리에서 삐걱거리는 가정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직장에서, 잊혀진 채로 남아있어야 하는 감옥에서,불의와 폭력에 왜곡되고 질식되어 당신의 사랑 목말라 하는 이 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사마리아 여인의 기도를 바치자.
『선생님 그 물을 저희에게 좀 주십시오』(요한4,14)
※그동안 수고해주신 한병우씨께 감사드립니다. 이번호부터는 박일 신부님께서 집필해주시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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