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내려서 약방 앞을 지나면 큰길 한옆에 옥수수파는 아줌마가 있다.
벌써 여름이 되기 전 늦봄부터 팔기 시작했으니 두서너 달째 이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버스를 기다린다든가 혹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이옥수수를 사서 그 자리에서 먹기도 하고 한두개 비닐봉지에 담아가지고 가기도하는 것이다. 싫지 않은 풍경이다.
옥수수 이야기가 났으니 말인데 함경도 두만 강변 우리고향 검은 땅에는 이옥수수가 잘되어서 여름 하철은 이것이 주식처럼 될 때가 왕왕 있었다.
가마솥으로 하나 가득쪄서 식구가 배불리 나눠 먹던 것이다. 향긋하고 여린 그 옥수수맛은 아마도 통일이 되어 고향에 돌아가기 전에는 도저히 맛볼 수없는 것일 터이다.
세월은 아득히 지나갔으나 싱싱한 옥수수 대 잎 파리에 산들바람 스치는 소리와 쨍쨍한 여름태양이 불볕을 쏟던 그날의 정경이 눈앞에 아득히 펼쳐지는 것이다. 내 두뇌 속을 왕래하는 이 몇 장의 흑백사진은 그러나 복사해 낼 수도 또 생생하게 현상해내는 일도 영 불가능하니 그저 참혹하게 시간에 묻혀 존재해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학생들이 여름방학을 맞아 농촌활동을 떠나는 것은 어제오늘에 비롯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서울대에서는 이 농촌활동문제로 말썽이 일어나 몇몇 학생이 제명이 되고 또 몇몇 학생은 징계를 받았다.
그뿐 아니라 제명 학생중 몇은 구속까지 되었다하니 불행한일이 아닐 수 없다.
학생들이 농촌활동이라는 체험을 통해 오늘의 농촌이 놓여있는 상황을 있는 대로 체득하며 또 실제 노동을 통해 심신을 올바로 단련하는 일은 값진 일이다.
짧은 기간이나마 농촌사람들과 생활을 같이하며 피차간에 격의 없이 지내는 동안 서로간의 이해를 돕고 우리들의 역사의식과 신념을 더욱 더 공고히 다지는 계기가 된다면 이는 새시대의희망과 목표를 위하여 과감히 장려할 몫도 되는 것이다.
우리들 기성세대는 이러한 활동을 죽어도 하지 못한다. 생각만은 절실하다 하더라도 이러한 활동에까지 몸을 던지기에는 우선 마음의 준비부터 미흡하고 오랜 습관에 젖어 살아온 생활의 껍데기를 벗어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기성세대가 못하는 일을 학생들이 한다는 것만 가지고도 우선 높이사야할 일인데 이것이 종종 문제가 되니 안타까운 일이라 하겠다.
이번 서울대생들의 경우는 학교당국과 학생들 사이에 애초부터 어떤 대화나 교섭이 추진되고 있었는지 자세히 알길 없으나 학생들은 농촌활동에 필요한 저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낳자 총장실을 점거하고 기물을 박살냈으며 말리는 교수들에 대해서 폭언까지 하게 되었다.
성급한 학생들이 격분을 못 참아 저질른 이 과정이 과연 어떠한 모양이었는지 상상으로 밖에 짐작할 수 없으나 아무튼 교수회의는 강경자세로 주동학생들을「이건 학생이 아니다」라고 낙인찍어 교문 밖으로 쫓아냈으니 지루하리만큼 긴 여름방학을 농민들 속에서 보내려던「농촌활동학생」들의 꿈은 서글피 부서졌다.
왜 사태가 이에 이르기까지 교수들은 학생들과 진실한 대화로써 풀어가는 노력을 하지 못했는지 국외자인 필자로서는 탄식밖에 보탤 것이 없으나 전하는 말에 학교가 부서진 총장실을 그대로 보존하여 앞날의 교훈으로 삼으려한다는 이야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스산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60년대 동경대학에서 학생들이 불지른 교사를 그렇게 보존했다는 것이 무슨 큰 교훈처럼 비쳐지는 모양이긴 하나 그건 일본에 있었던 일이지 우리와 그닥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하필이면 일본에서 어떻게 했으니까 우리도 어떻게 하련다라는 발상이나 의식에는 서울대를 대표하는 최고교수님에 통 어울리지 않는 품격이 엿보여 화가 치미는 바다.
일본인들이야 무슨 생각에서 그와 같이 했건 우리 서울대학이 동경대학의 불탄 자리의 박물관화나 본뜬대서야 자존심이 상해요 이만 저만이 아니다.
난동학생들을 그만큼 처벌했고 어제는 모든 게 일단락 된 셈이다. 그러면 예산이야 늘 부족하겠지만 부서진 기물도 새것으로 바꿔놓고 유리창도 손질할 일이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 듯이 원상을 회복해놓는 게 우리들 어버이 마음이며 스승의 마음이요 아량이라야 옳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이른 봄부터의 가뭄으로 농촌은 그나마도 농사일이 말이 아니란다.
한숨과 탄식이 저절로 나오는 농민들의 삶을 우리는 너무 모르고 지내는 것이나 아닐까.
오랜 세월동안 억울하게 고통 받으며 살아온 농민들의 한 맺힌 설움과 참상을 진짜로 아는 사람은 가슴에 복 바치는 분노와 원한을 지녔을 터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의 주장과 개혁의지가 어떤 모로나 수용이 되지 않고는 결코 무사할 수 없다는 것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요 역사현실이다.
학생들의 열정을 이해하면서도 과격한 행동은 어쩐지 찜찜했다. 그리하여 11명이나 제적당한 이번 일이 벌어졌다.
이게 다 분단을 해소하고 통일을 성취하는 큰 역사로 나아가는 걸음걸이의 단면이라고 한다면 그만일 터이나 제적된 학생들의 불행과 슬픔은 여전히 남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번 일로 스승께 사과하는 대자보도 몇 차례 붙쳤다고 한다.
그러면 용서하는 일이 우리어른들 사이에서 뒤따라야 하지 않을까. 스승들이여, 노여움을 풀고 이 거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몹쓸 제자이긴 하나 사람을 아주 버리는 일만은 절대로 하지마시기를 진심으로 비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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