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진 삼신님 아침 이슬에물 붇듯이, 초승에 달 굵듯이, 먹고 자고 먹고 놀고, 은근실 노근실, 자상하신 우리 삼신할매가 뭐는 모르실 니껴 앉아 삼천리 서도 삼천리, 구만리 장천리, 다 내다보시는 삼신님께서 꼭 말씀 드려야 알리껴마는, 그저 우리 손주놈, 눈에는 총기 주고, 손에는 재주 주고, 입에는 말문 주고, 한자 알면 열자 알고, 열자 알면 백자알고, 수명장수 시키시고, 명월란 동방석에 들이시고, 그저 명과 복 주시기를 열 손 모아 빌어 비나이다』
이것은 우리 할머니들이 안방 시렁위에 얹어 놓은 삼신 바가지에 대고 비는 정성기도의 일부이다.
대청마루의 천정 기둥에도 韓紙를 접어서 매달아 두고 치성을 드렸는데, 이 신체는 성주(成主)로서 집안의 최고어른인 셈이다. 이 성주에 정성을 드릴 때 大主가된 할아버지의 근엄하면서 경건한기도 모습은 오래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다.
또 축담이나 고방, 혹은 다락위에 모셔 진용단지도 보아왔고, 심지어 부엌바닥에도 神의존재는 있어왔다. 솥에다 정성 밥을 지어 놓고 식구수대로 숟고락을 꼽고 빌면서『조왕님요, 우리 집 재수 들고 그저 온가족 평안토록 돌아들며 돌보시고, 들며날며 보살피시이소』하고 기도드리는 건궁조왕이라는 부엌신도 있었다.
그것뿐인가? 측신이라 불리는 뒷간신도 있었지 않는가? 이웃집에서 갖다 준 떡은 측신에 먼저 요기시키고 먹어야 뒷 탈이 없고, 간혹 잘못해서 변소에 빠질라치면 떡을 해서 차려 두고 측신에 세 번 절하고 속 든든히 먹어야 죽지않는다고 굳게 믿어왔다.
그러니까 안방에도 대청마루에도, 그리고 축담이나 고방, 심지어 부엌이나 변소칸에도 神의 존재는 엄존했고 빌고 빌어야할 神體는 곳곳에 있어 왔다. 온 집안이 神堂이고 聖殿이었던 셈이다.
집을 나서면 동구 밖의 성황당에도 堂神은 계셨고 큰 나무에는 神木이요, 커다란 바위에도 영험은 있어서 금색줄을 둘리고 그냥 지나는 법이 없었다. 동네 어귀엔 어김없이 눈을 부라린 장승들이 서 있어서 잡귀를 물리치고 온동네를 지키고 서 있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온 동네가 神殿이고 성역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온 집안이, 온 동네가, 그리고 온 이웃 공동체가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창조주의 손길을 느끼고 神에 대한 경의심을 가지고 살아 왔다면 오히려 그들이 참다운 신심을 가진게 아니었을까?
없는 神도 만들듯해서 믿고 빌었다면 오히려 그들이 우리 신자들 보다 더 주님의 존재를 알아본 것은 아닐까?
하느님의 손길이 머문 깨끗한 정한수 한 그릇에 그렇게 지극한 정성 기도를 올릴 수 있었던 신앙 선조들이 있었기에 목숨조차 바치는 치명도 가능 했을 것이 아닌가?
없는 神도 만들어 믿었는데-.
X X X
지금까지 수고해주신 변기영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호부터는 안동문화회관 이진구 (시몬) 관장께서 집필해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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