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군종신부 시절은 전세방 얻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8월초 뜨거운 태양아래 강릉시내를 온통 뒤지며 복덕방이란 복덕방은 다 찾아다녔다. 방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싼 값의 전세방은 더욱 찾아볼 수 없었다.
간신히 방 하나를 구해 겨울을 넘기고 이듬해 시내 산동네 하늘 아래 첫 집을 구해 이사를 했다. 공기도 맑고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봄에는 따뜻한 햇살이 조그만 앞 마당을 간지럽혔고 여름에는 장대같이 내리 꽂히는 빗줄기도 좋았으며, 창문을 열면 대관령 큰능선 위로 비구름 뭉게뭉게 넘어오는 경관이란 그야말로 한 폭의 동양화였다. 개구리 우는 소리도 어둠이 짙게 내린 밤의 적막함을 깨뜨리지는 못했다.
밤12시가 지나서야 쫄쫄흐르는 여름 산동네 물 사정은 욕조에 받아놓고 칫솔질부터 목욕까지 아껴가며 써야했다.
그럴때면 나는 흡사 사막의 순례자 같았다. 그러나 그 물도 나의 게으름 때문에 종종 썩어버리곤 했다. 나의게 으름과 무관심은 가끔씩 다니러 오셔서 장만해 주시는 어머님의 손길 배인 음식물까지 상하게 했다. 결국 남아있는 것이라곤 방안에 쌓인 소복한 먼지 뿐이었다. 겨울엔 매서운 바람을 등으로 가로막고 대문을 열고뛰어 들어와 라면으로 배고픔을 달래고, 불기 없는 냉방에 전기장판 하나로 이를 악물고 억지로 잠을 청하기도 했다.
2년간의 어려운 자취살이를 하는 동안 내내 곁에 계시며 그 고통을 함께 해주신 분은 어머니였다. 몇주일에 한번씩 찾아오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어린 아이 마냥 그날을 기다렸다. 편찮으신 몸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당신의 아들을 찾아주시는 어머니가 너무도 반갑고 소중하여 눈물까지 어리게 했다. 어머니께서 오시는 날은 퇴근길 핸들이 가볍다. 벌써 오시어 눈물섞인 미소로 대문턱에서 반가이 맞아 주시는 어머니! 도둑 들었던 방같이 어지러웠던 방은 말끔히 정돈 되어있고, 오랫동안 찌든 밀린 군복ㆍ내의 등이 빨랫줄에 가득 널려 있다. 연탄불이 들어가는 아랫목도 따뜻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된장찌개, 따끈한 쌀밥, 생전 처음 받아보는 듯한 진수성찬이다.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으로 차려진 상 앞에서 한없이 행복해 하며 숟가락을 움직인다.
그러나 이같은 즐거움도 길어야 4, 5일 이었다. 어머니는 서울로 돌아가시어야 했다. 방구석의 보따리가 한층 더 나를 서운케 한다. 아들 찾아 오시매 묵주알 굴리시며 기쁨으로 오셨으나, 냉방에 두고 가는 아들을 근심하여 언젠가 당신 말씀대로 십자가 지고 가시던 예수님과 상봉하신 성모님의 심정을 묵상하며 눈물을 머금고 가시던 그 뒷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머니! 조그맣게 입속말로 되뇌이던 그날의 감회가 새삼 새롭다. 오늘은 지금껏 내옆에서 조용히 보살펴 주시는 어머니의 따뜻한 그손을 한번 꼭 쥐어드려야겠다.
어머니! 당신 사랑의 품안에서 저를 영원케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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