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성적을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 중고등학생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공부 못하는 학생은 아예 사람취급도 받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 버린 까닭에 그럴 바엔 아예 죽어 버리고 말자는 충동이 어찌 일어나지 않을손가.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학우들로부터, 가정에서는 부모와 가족들로부터 따돌림과 서러움을 받아야하니 노력이 부족했던 학생은 노력으로 극복하지만 천성적으로 머리가 둔한 학생은 그 심정이 오죽하랴. 『성적이 나쁜 학생들이여 제발 비관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요! 세상이 비뀌어져 가고 있잖아요! 성적의 우열도, 빈부의 차이도, 높은 사람 낮은 사람도, 인생의 고귀함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우렁차게 소리칠 날이 점점 가까워 오고 있잖아요』
성적비관 자살사건.
도대체 그 까닭은 무엇이고 누가 책임을 져야할 일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학생들보다는 우리 사회 편에 훨씬 더 분명한 까닭과 무거운 책임이 있다고 생각 된다. 산업사회에로의 급격한 변화와 비례하여 인간성의 위축현상이 뒤따르고 우리들 핏속에 남아있는 양반상놈의 봉건적 계급사상이 아직도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 지난 날을 되돌아보자.
강대국의 침략으로 먹을 것 입을 것 몽땅 빼앗기었고 6~25전쟁으로 또 한차례 몽땅 잃어버린 채, 굶주림과 못 배움에 한이 맺혀왔다. 그러기에 실컷 먹고 실컷 갖고 실컷 배우고 싶고 한껏 높은 사람이 되어 보려고 열망이 우리들 뼛속 깊이 사무쳐있다. 따라서 부모도 문교행정도 정부시책도 하나같이 아이들 더러 높은 사람, 최고학부, 최고부자가 되어야한다고 가르쳐왔다. 『넌 앞으로 자라서 뭐가 될꺼야』백이면 백명 모두가 한결같이『대통령, 장군박사』라고 대답해왔다. 출세를 바라는 부모에게 출세가 도대체 어떤 것이냐고 물어 보면 한결같이『부자, 높은 고관』이 되는 거라고 대답한다.
미국에서 교포사목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한 아이의 어머니가 찾아와서는 무조건 대성통곡을 해댔다. 무슨 큰 사고라도 났는줄 알고 다급히 캐물었더니『하나뿐인 아들하나 잘 키워 높은 사람 만들려고 이민을 왔건만 백번을 물어봐도 앞으로 커서 소방수가 되겠다고 하니 이일을 어쩌면 좋으냐』고 한탄을 했다. 지금은 교포사회가 많이 달라졌지만 남의 집 불을 꺼주는 소방수나 강도를 잡아내는 순경이 되겠다는 아이들 때문에 실의와 번민으로 한숨을 몰아쉬는 부모들을 수없이 보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오히려 부모들을 나무랬다.
이웃을 도우며 살겠다는 소방수, 나쁜사람을 잡아내고 살기 좋은 사회를 이룩하겠다는 순경이 왜 못마땅하냐고 꾸짓기도 했다. 훌륭한 일 보람된 일을 하며 살겠다는 순진한 의지의 표현이 아니냐고 따지기도 했다.
9월이 되면 이태리 일간지에는 희한한 광고가 눈길을 끈다.
「학생들이여 제발대학에 들어와 줘요. 군복무면제, 등록금 일체면제의 혜택 등등…」
문교부가 게재하는 애타는 광고내용이다. 이렇게 좋은 조건이건만 어째서 젊은이들이 대학을 기피하고 문교부는 오죽하면 이런 광고를 내야할까!
어느 젊은 친구에게 왜 대학을 가지 않느냐고 물었더니『난 머리가 좋은 편이 못되어요. 공부체질이 아닌가 봐요. 이 기회에 군에 입대하여 나토군으로 독일, 영국등지로 공짜 여행도 하고 군복무가 끝나면 빨리 사회에 진출하여 나에게 알 맞는 직장을 가질래요』
대학출신과 고등학교출신의 사회적 대우의 차이란 모기발톱보다 작기에 구태여 골치 아픈 학문 연구에 뛰어 들지 않겠다는 말이다.
세상은 많이 바뀌고 있다. 아니, 우리의 현실도 바뀌어 져야한다. 삶의 의미도 출세의 내용도 바뀌어져야하고 사람의 높고 낮음도, 가진 자와 못가진자와의 편차도 좁혀져야한다. 신분에 따라 직책에 따라 사람의 인격이 차별되어질 수 없다.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바 있는 영화「스카보로의 추억」의 감동을 되새겨 보자.
척추를 다쳐 휠체어의 신세에도 불구하고 문교부장관을 찾아가『왜 내가 선생이 될 수 없습니까』라고 따지며 결국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선생이 되었고 불구자는 선생이 될 수 없다는 법률을 뜯어 고치게 된 실화가 있지 않는가!
팔 다리가 없다고 사람이 아니던가!
귀가 먹었다고, 앞을 못 본다고 사람구실을 못 할리가 있는가. 횐 가운을 입고 열심히 음식을 만들어내는 주방의 요리사들의 저 위세 당당한 모습을 보라.
일자무식이라고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너는 너의 할일을, 나는 나의 자랑스런 일에 만족하면서 잘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부모들이여, 문교당국이여, 그리고 모든 기성인들이여, 우리의 자녀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자. 각자에게 알 맞는 삶을 오히려 권고하자.
그리고 학생들이여, 성적이 나쁘다고 비관하지 말아요. 여러분의 시대엔 반드시 각자의 능력과 취향에 따라 남부럽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이루어질 거예요.
그리고 믿는 자들이여, 비우는 신앙, 버림의 신부를 스승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배우고 실천합시다. 낮추인자를 낮추아니 보시는 하느님께서는 스스로 낮추는 사람을 끌어올리시고 높은자를 낮추시어 평등하게 이 세상을 가꾸어 가십니다. 안다는 사람에겐 그 신비를 감추시고 그저 평범히, 철부지처럼 살아가는 사람에겐 모든 것을 드러내 보이시고 축복하시어 포옹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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