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이삐이 쪼로 쪼로르-그새는 그렇게 울었다.
전깃줄에 앉아 꼬리를 까딱까딱하며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그새는 가슴과 배가 노오란 색을 하고 있어 이름이 노랑할미새였다.
우리나라 산지나 평지의 물가에서 살고 있는 여름새라고 옆에 있는 친구가 일러주었다.
애당초 새 구경을 가자고 서울을 한 시간쯤 불문곡직 빠져나올 때 만해도 나는 친구를 이해 할 수 없었다.
아니 너무나 황당무계하게 생각되기도 하였다.
정신없이 생활에 부대끼며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에게 무슨 한가하게 새 구경이냐고 코웃음을 쳤고 그의 그 같은 여유가 부럽다기보다 방만하고 오만해보이기까지 했었다.
새라니! 나는 당혹스럽게 그렇게 되물었던 것이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전깃줄 앞에 꼬리를 까딱거리며 앉아있는 노랑할미새를 보았을 때 순간 나는 너무나 새로운 세계에 다가서고 있는 나를 느끼고 있었다. 분명 그 새로운 세계는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참새나 제비, 좀 색다른 새라고는 그저 조롱에 갇힌 관상조나 바라보며 살아왔던 나에게 광활한 허공을 유유히 나르는 야생조를 만난다는 것은 분명 신선한 기쁨이었다.
그것은 관심이었다. 무관심은 세계를 막는 것이요 관심은 세계를 여는 것임을 깨달은 것도 새로운 공부였으리라.
『반드시 많은 시간과 많은 돈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니야. 자연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가지는 사람에겐 짧은 시간에도 문일 푼으로 새로운 세계와 접할 수가 있지』
친구의 말에 나는 진실로 공감했다.
두 번째로 우리가 만난 새는 도요새였다,
계곡의 작은 돌 위에 오똑 서 있는 내 주먹만 한 알락도요새는 외롭고 처량해 보였지만 옹골진 폼이 만만치 않았다.
먼발치에서 발자욱을 죽이며 살금살금 다가서는 나를 도요새는 너무나 빨리 알아차려 날아가 버렸고 그 뒤를 이어 작은 자갈들이 잠겨있는 물 가장자리에서 꼬마 물새 떼를 만났다.
눈에 앙증맞게 까만 테의 안경을 쓴 듯한 그 작은 새는 사람의 낌새를 그렇게 싫어하지 않는지 매우 가까운 자리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하루를 새를 찾고 만나면서 즐겁게 돌아왔다.
정신이 싱그럽게 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그만한 날 개가 내 등에도 달려있는 듯 팔을 들면 훨훨 나를 것도 같은 심정이 되었다.
적어도 새를 생각하고 새를찾고 만나는 그 시간에는 사람을 미워하지도 욕하지도 않을것 같은 것은 나의 고질적인 환상병 때문일 것인지.-
나는 다음날 서점에 가서 조류도감백과 한권을 샀다.
내가 만났던 새들을 책에서 보는 기쁨과 감격 또한 대단한 즐거움이었다.
그렇다면 내 주변에 새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침마다 뒷산에 오르는 습관을 오래 지켜오고 있었는데 그때마다 야단스러운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인지 노래 소리를 스치며 지나오고 있었다.
그만큼 나는 어떤<세계>를 놓치며 살아온 것이었다. 가지고 있었던 것을 읽어버리는 것만이 상실이 아니다. 찾지 못하고 있는 무지한 상태 또한 큰 상실이 아니던가.
그런 깨우침이 있고난 다음부터 나는 뒷산에서 매일 새를 만난다.
흔하게는 찌르레기, 뻐꾸기, 딱새, 까치 등을 만날 수 있는데 가끔은 휘파람새도 운 좋게 만날 수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무심코 올랐던 아침산행에서 후두티를 만났던 것이다. 후두티는 유럽ㆍ아시아ㆍ아프리카에 분포되어 있는 새인데 여름에 우리나라 중부지방에만 나타나는 새이다.
입이 뾰족하고 윗부분이 주황색이고 날개와 꼬리에 검은 줄무늬가 있으며 머리에 줄무늬의 우아한 관이 있는 아름다운 새이다.
나는 오래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후두티를 바라보고 즐거워했고 그 기쁨은 오래 식지 않았다.
나는 내가 새를 사랑하고 자연과 친해지며 새로운 세계와의 연분을 이어준 친구에게 감사하고 있다.
나는 이 여름에 호반새나 파랑새, 만나기 힘든 팔색조라도 인연이 닿을 수 있다면 하고 희망하고 있지만 만나지 않아도 섭섭하진 않다.
내 마음에서 새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있다면 그 새가 어디에 있거나 또한 없더라도 그 새는 내 마음에 있을 것이다.
다만 내가 새에 무관심하여 그 세계를 없는 것으로 지우고 살아왔듯이 반드시 내가 알아야할 세계를 그렇게 캄캄하게 모르고 지내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또 낮게 낮게 자신을 낮추며 고요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오 거룩한 창조자의 영광된 세계에 찬미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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