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계 주교회의가 끝나고 그 결과가 발표되었다. 예상이 적중되지 못할 때 느끼는 어리둥절함을 많은 사람이 맛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주교회의에서는 민족 통일에 대한 한국주교단의 입장을 다루는 의안이 상정된다고 하였는데 그 결과는 발표되는 것이 없고 기대와는 달리 전국평협, 학생회, 농민회에 대해서는 기대하지 못한 결정이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주교회의의 결의가 기대 밖이라고 하는 것이 일반화할 수 있는 말이라고 가정한다면, 거기에는 분명히 주교회의와 주교회의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 의견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 차이는 시각의 차이와 정보의 차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차이는 무엇이며 왜 있는 것인가? 주교들은 세상 일을 잘 모르고 주교회의의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하 신자들로 표현함)은 주교들이 모르는 세상 일들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정보의 차이를 우선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주교들이 가진 정보의 질과 양이 신자들의 것과 다른 것은 사실일 것이나 아무도 어느 한편의 정보만이 우위의 가치를 지녔다고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주교단의 입장을 표명하고 교회에 관한 일을 결정하는데 한해서는 주교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 즉 신학과 영성, 역사상 교회 교도권의 흐름과 오늘날 지식이 적어도 비교적으로는 탁월하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여기, 이 땅의 일에 대해서도 함께 살고 있는 한 사람의 신자, 한사람의 시민으로서 다를바 없다고 보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면 그 차이는 시각의 차이인가? 그렇다. 정보의 수용 과정에서부터 근원적인 선택이 작용되는 것이다. 이 근원적인 선택은 원초적으로 또 궁극적으로 초연한 가치에 대한 인정 즉 절대자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태도에서 결정된다고 요약해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결정에 따라 시각이 각도를 달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교들의 선택이 신자들과 다를 수 없는 것은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의 교도아래 신자들의 선택이 계속 재확인돼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의 일에 관한한 주교의 교도권이 존중되고 또 존중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번 주교회의에서는 기대 밖의 일이 또 있었다. 그것은 성직자의 직무와 생활 규정, 미사예물의 직무와 생활 규정, 미사예물규정을 제정한 것이며 한국 사제 양성 지침서를 심의, 확정한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규정 없이 잘 살아왔기 때문에 없는 것이 관행이 되어 새로 제정되었다는 점이 뜻밖이나, 규정자체는 필요하고 유익한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이것은 사제와 사제양성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성직자들에게 국한된 일이고 또 이런 규정 없이도 우리 성직자들이 그 정신에 부합되게 생활하고 사목할 것은 믿어 의심치 않으나 그렇기 때문에 그런 규정이 제정되어 있다는 것을 평신도들까지 아는 것이 한국교회 장래를 위해서 바람직하다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또 한가지 기대하지 못한 결정은 수도장상들과의 연석회의를 합동회의로 바꾼 것이다. 공의회 이후 합동회의를 개최하여 오던 중 소수의 참석자보다 모든 장상과 주교 전원으로 확대하는 것을 원하여 연석회의를 가지게된 것이라고 하지만, 2백주년을 전후하여 급격히 늘어난 수도회의 수와 대화를 위한 기술상의 어려움은 충분히 납득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이렇게 신자들에게 직접 해당이 되지 않거나 신자들의 관심에서 먼 일들도 주교회의에서는 많이 관여하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일반 시민과 신자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일, 예를 들면 개헌문제, 통일문제, 농민ㆍ근로자문제, 공해, 반핵문제나 산아 제한문제, 극빈자, 실업등 사회보장제도, 성윤리, 가정파탄, 청소년 문제, 교육 제도 등등 이른바 사회정의, 인권회복, 민주화라는 말로 포괄되는 많은 문제에 대해서도 주교회의는 더 많이 관여하라는 재촉을 받고도 항상 미온적인 것이 사실이다.
이상의 두 가지 사실로 주교회의는 교회내의 일을 말하고 일반시민 내지 신자들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적게 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주교회의는 즉각적인 응답을 잘하지 않는 교회의 일반적인 습성을 가진 것이 분명하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태산 같아도 그것을 정리하기 위한 공의회는 드물게 연다. 긴 세월동안 문제를 반추하면서 민주적으로 스스로 정리되기를 기다리면서 다만 바른 정신만 일깨우는 일을 하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인내와 용기로 기다리고 때가 되면 결단을 내리는 것이라 한다. 우리는 주교회의가 얼마나 기다리는지 또 결단을 내릴 때가 언제인지 그 시간은 주교회의만 알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교회의를 믿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또 우리가 주교회의를 믿는 것은 우리가 성신을 믿고 교회를 믿기 때문이다.
이번 주교회의의 결정 가운데 기대하지 못한 사항이 많지만 발표된 결과들을 면밀히 검토하면 어디서나 쉽게 교회의 정신을 살리려는 주교들의 고심이 역력히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의 현실에 교회의 정신이 살도록 하는 것은 주교들의 고유하고도 막중한 최고의 임무이다.
주교회의의 결과를 기다린 사람들, 신자들은 주교회의의 결정에 대해 이견이 있더라도 주교들의 교도에 순응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교회를 위해서 바른 길임을 믿고, 교회의 정신이 세상에 전해지도록 함께 노력하여야할 것이며 추호도 사회의 현실이 교회의 얼굴이 되지 않아야한다는 것을 밝혀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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