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라, 오줌 싸고 똥 싸놓는 기저귀인가! 그렇다. 하필이면 신부의 체통도 없이 오줌 똥 이야기 일까마는 그보다 더한 것이면 어떠랴! 생각컨대 나의 온갖 인간적인 약점과 오물을 받아내기 위하여 기저귀를 채워주고 빨아주는 사람이 있어 오늘까지 내가 살아왔고 이만큼 큰 것이기에 누가 뭐라 해도 나에게 사랑과 애정의 기저귀를 던져주는 이를 잊어버릴 수는 없다. 동생들이 다섯인 나는 자라면서 아주 가끔씩은 동생들의 기저귀를 바꾸어 줄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얼굴을 찌푸리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날마다 몇 번씩 하시는 어머니께서는 언제나 기쁜 표정으로 하실 뿐 아니라 때론 오줌 똥 잘 싸는 것이 귀엽다고 『음! 요것, 내 새끼지』하시면서 뺨에 입을 맞추시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아왔다. 나도 어렸을 때 저렇게 사랑을 받으며 컸겠지. 온갖 오물을 버리는 자식을 감싸는 그 어머니의 사랑, 또 그 사랑에 기대어 마음껏 먹고 자라고 일하는 믿음을 맛보지 않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과연 기저귀란 믿음과 사랑의 대명사가 됨직하다.
얼마 전 동료신부가 『야, 너 무슨 일을 이렇게도 많이 벌려놓고 있냐!』하기에『그런 소리 마라, 어린애란 오줌똥을 싸야 크는 법이요. 그것을 치우느라 그 어머니는 사랑도 커지고 부지런해지는 법이야!』하고 궤변을 했지만 사실 이 말은 궤변치고는 좀 그럴싸한 궤변 아닌가, 기저귀 갈아 채우는 이 미안해서 오줌 똥 안 누고 오줌 똥 나오는 것 무서워서 밥 안 먹으면 어찌 그런 아이가 정상으로 자랄 수 있겠는가!
또는 기저귀 갈아주는 사람이 그것이 귀찮아서 하루에 또는 한 달에 한번 씩만 갈아 준다 거니 그나마 갈아 줄 적마다 볼기짝을 한대씩 때리면서 야단을 치고 갈아 준다면 그런 아이와 엄마는 얼마나 불행한 관계일까! 믿음이 없고 사랑이 없는 관계이니 말이다. 나는 신부가 되기 전데도 『저런 사람이 신부가 되면 내 손가락에 장을 짓겠다』는 둥 하는 나의 약한 점을 물고 늘어지는 사람을 가끔 만났다.
물론 신부가 된 후에도 내가 싸놓은 온갖 인간적인 약점들을 흔들고 다니면서 신부가 싸 놓은 오줌 똥 보라고 소위「말질」을 하는 사람도 보아왔지만 그러나 어느 결에 그랬는지 모르게 슬그머니 나에게 기저귀를 채워주고 묻은 약점과 오물들을 씻어 주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나는 그런 분들을 나의 은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여름이 되면 잊을 수 없는 사건들이 몇 가지 있지만 그중에서 특히 기억나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7년 전 내발목이 고장 났을 때 나를 간호해준 분들을 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분들 중 어떤 이는 침대에서 꼼짝도 못하는 나의 오줌똥을 받아내 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그때처럼 결혼하지 않은 것을 속상해 해본 적이 없다. 무더운 여름 팔다리를 묶어 놓았으니 고통스러웠을 뿐 아니라 부모님에게 효도는 못할망정 이럴 때 오셔서 오줌 똥 치우시게 할 수는 없다는 오기 때문에 믿고 똥을 누고 사랑으로 기저귀를 갈아 줄 사람이 없었으니 왜 결혼에 대한 생각을 안 할 수 있었겠는가!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면서 팔다리의 끈을 간호원이 풀게 하였지만 내게도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어찌 다 큰놈이 그것도 신부가 남의 손으로 오줌똥을 치우게 한단 말이냐.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밥을 잘 먹지 않았고 그 더운 여름갈증에 물도 잘 마시지를 안했지만 그러나 어디 먹지 않고 싸지 않고 치료도 불가능 하거니와 살수가 있겠는가. 내가 제단에 설 때마다 나의기도 안에 머물고 있는 이는 나의 온갖 오물이 묻은 기저귀를 갈아 끼우고 온갖 뒷바라지를 다해주며 살아가는데 용기를 주는 은인들이다. 지금도 내가 아는 곳에서 모르는 곳에서 나의 눈에 보이게 보이지 않게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어쩔 수 없이 흐르는 추함 부족함 미련함을 곱게 곱게 닦아내고 감추어 줄 수 있는 기저귀를 든 은인의 손이 있기에 황소처럼 앞을 향할 뿐이다.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기저귀를 필요로 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터라 은인들이 없다면 나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이가 없다면 내가 얼마나 두려움에 묻혀있을지 나는 안다. 찌는 더위 무더운 여름이라 하지만 함백산맥 줄기의 해발 800m에 사는 나에겐 비록 검은 먼지는 날릴 진정 끊임없이 부는 상큼한 바람과도 같이 나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은인들의 숨결이 스쳐간다.
이 여름에 자신의 약점을 감싸주며 추한 것을 씻어주던 단 한분의 은인이라도 찾아뵙자고 만나는 이에게 뜻을 전해본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