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틔마을에서, 어두운 날
산 넘어가면 또 산인 마을에
웬 어둠 이리도 깊은지
문풍지 떨어대며 바람 귀에 들려오는
토사교문에 오가작통
산 첩첩 물 첩첩
신유 기해 병오병인
넘어도 넘어도
피바람 몰아치는 거친 황토 땅
흙먼지 자욱한
가문 들녘 모진 세월
그대 기다림에 지쳐
흙벽에 등을 기대면
어디 맑은 물소리 들려오는지
사이벌 건너오는 바람 소리에
마른 호박잎 대통에 가득
천주실의 닳은 책장만 밤새 넘긴다.
<註>
※토사교문(討邪敎文) : 근본적으로 천주교를 말살시키려 1801년에 만든 법령
※사이벌: 경상남도 울주군 살틔마을 북쪽 천황산에 위치한 요지로 교난을 피해온 천주교도들이 숨어 옹기를 굽던 곳
살틔마을에서, 순교자 김베드로
천주실의 감독 소리도 그친
산마을 늦은 시간
어둠에 길이 끊기면
스스로 길이 되어 오는 그대여
자운영 환히 핀 싸리 울타리 너머
치도곤에 묻어나는 그대 뼈와 살이 보인다
깊은 어둠 푸른 별빛 속으로
스스로 길이 되어 오는 그대 모습이 보인다
살틔마을에서, 그대의 별
베드로야
베드로야
지게문 흔드는 소리에 잠이 깨면
세상은 아직 깊은 어둠 속
어디쯤일가
그대에게로 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어둠 멀리
그대의 별이
천주실의 성교예구처럼
이불을 끌어다 덮는 우리의 이마 위로
뿌리내리고 있다
가련함이여
어두울수록 더욱
그대의 별이 빛남을
우리는 아직 모르고 있다
살틔마을에서, 자운영
그대의 집으로 가는 길목
자운영 피었다
이 땅 이 어둠 어디 끝없다더냐며
우리 아직 어둠이었을 때
숨죽여 흐느끼고 있을 때
논배미 물을 빼고 뿌려둔
가라진 아버지의 땀과 눈물이
어둔 살틔 들판 하늘 빗장을 풀어헤치며
우리 손잡고 그대의 집으로 가는 길목
병인년 황아짐진 채 끌려간 방구 아범도
치도곤에 무릎 뼈 빠져 혼절한 덕이네도
그대의 집으로 가는 길목
그대처럼 자운영으로 환하게 피어있었다.
살틔마을에서, 5월
연초록 나뭇잎사이로
푸른 五月 하늘 보인다
그대에게로 가는 길목
숨어드는
산수 오거리거나
충장로 어느 골목으로 숨어드는 쫗긴 발걸음
수런수런
아카시아 꽃이 피지 못한 채 떨어져 내린다
하얗게 떨어져
썩어간다
썩어져 밀알처럼
그대처럼
아카시아 더 깊게 뿌리 내린다
더 깊이 뿌리내려야 한다
피멍든 조국의 땅속 깊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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