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제7대 교구장을 역임한 徐正吉(요한) 대주교의 서거는 대구대교구민은 물론이요, 평소 그 분을 존경하고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과 특히 한국 천주교회에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주었다.
서대주교의 서거는 한국교회 근세사의 주역이며 산 증인으로 어렵고 복잡한 시기에 교회를 이끌어온 장본이이라는 점에서 아픔을 더해주고 있다.
서대주교는 우리 민족의 비극인 6ㆍ25동란이 끝난 후 국가와 교회가 모두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안정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던 1955년 7월 13일 제7대 대구교구장으로 취임했다.
당시 교구장으로서의 최대 관심사는 국가나 교회가 전쟁으로 인한 폐허와 불안ㆍ빈곤에서 벗어나 하루속히 안정을 되찾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그분이 교구장 취임 후 미국이나 구라파 등지의 교회를 순방하면서 원조를 요청한 사실에서 엿 볼 수 있다.
그리고 6ㆍ25를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반공의식을 서대주교는 교회의 지도자로서 철두철미하게 가지게 된 것도 바로 이때였다고 볼 수 있다.
바로 국가나 교회가 더 이상 전쟁이나 분열로 혼란과 무질서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뼈저린 교훈을 확신으로 가지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가와 교회에 대한 서대주교의 이러한 확신은 그 후 4ㆍ19와 5ㆍ16혁명 10ㆍ26사태 그외 여러 차례의 크고 작은 구내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교회와 정부가 갈등을 빚는 가운데 교회를 수호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교구장재임 31년동안 교회와 정부가 대립될 때마다 서대주교의 입장은 보수적이고 따라서 그 입장이 정부측을 간접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교회일각에서 많은 오해도 있었고 심한 비판의 소리도 없지는 않았다.
지금 이 시점에서 서대주교의 입장이 전적으로 잘못되었다거나 혹은 전적으로 옳은 것이었다고 어느 누구도 판단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 판단은 오로지 하느님과 후세의 교회사가들에게 맡길 뿐 당내의 어떤 사람도 정확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만일 어느 누가 그 판단을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 한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자기 편견에 사로잡혀 객관 타당성이 있는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생전에 그리고 사후 서대주교가 보여주고 남겨놓은 목자로서의 삶을 잠시 되돌아 보는 것이 서대주교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참고가 될듯하다.
먼저 서대주교는 1938년 6월 11일 사제로 서품된 후 주교품을 받기 전까지 사제로서, 그리고 1955년 주교품을 받고 교구장에 취임, 재임 31년간 주교로서 성실하고 모범적인 참된 목자의 삶을 사신 것이다. 성직자로서 50년 이상을 인간적인 측면에서도 과오없이 사신 그 자체 하나를 놓고도 그분의 뛰어난 인품과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서대주교는 사심이 전혀 없었던 분으로 만인이 공감하는 점이다. 성직자에게도 인간적인 측면이 전혀 도외시되지 않는 것이 어제 오늘의 현실이라고 볼 때 모든 일을 사심없이 오로지 하느님과 교회를 위해 처리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지난해 7월 5일자로 대구 대교구장직을 사임한 것은 가장 큰 모범중의 모범이라 볼 수 있다. 교황청이 제시한 교구장들의 만 75세 정년 규정을 기꺼이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대구대교구를 위하는 일념에서 미리부터 후임자를 선정, 대임을 계승하도록 한 것은 바로 이점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후임자에게 대구대교구장직을 물려주고 교구의 모든 업무가 새 교구장을 중심으로 조금도 혼란없이 정상적으로 움직이도록 모든 조처를 취했다는 사실 역시도 사심없고 참으로 대인다운 모범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다음으로는 실제로 가난하고 겸손하게 사신 점이다. 성직자로 일평생을 사시면서 그 흔한 승용차 한 대 사서 타신적이 없고 생전의 거소에는 가재 도구하나 갖추어져있는 것이 없었다. 옷가지도 두세벌 밖에 더 찾아볼 수가 없고 세속적인 귀중품이라곤 전혀 볼 수가 없었다.
지난 72년도부터 임종 전 마지막 입원까지 15년 동안 사신 곳은 양로원으로 늘 불우한 노인들과 함께 평범하고 소박하게, 그러면서도 교회 지도자로서의 막중한 임무를 위엄있게 수행하면서 사셨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교회 최고 책임자로서 카리스마적인 지도력과 통솔력 그리고 판단력으로 교회의 진로를 올바로 이끌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참으로 가난하게, 사심없이, 불우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가진 바를 나누고 그들과 함께 실지로 사신 분으로 서대주교는 평가받고 있다.
서대주교가 한국교회 발전에 얼마나 이바지했나하는 문제는 앞으로 전문가들에 의해 정확한 평가가 되겠지만 서대주교의 서거가 오늘을 사는 우리 신앙인 모두에게 주는 가르침은 실로 크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세속적인 표현을 빌린다면 소위 권좌에 있으면서도 그 권세를 사용한 적이 없으며 원하는 바를 가질 수 있었으되 하나도 가지지 않았던 분. 그러면서도 존경과 사랑을 많은이들로 부터 받았던 분.
바로 서대주교의 이러한 모범은 오직 참된 신앙인이요 참된 목자로서 하느님과 그 나라 확장을 위해 송두리째 자신을 바쳐 聖人의 삶을 사신 것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서대주교님께서 하느님 품안에서 영복을 누리시며 한국교회를 천상에서 지켜주시기를 두 손모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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