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젊은 사제의 강론에 이런 말씀이 있었다. 『성인 신부나 훌륭한 신부는 고사하고 주위에서 욕이라도 얻어먹지 않는 평범한 사제노릇을 하기도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겠읍니다. 교형 자매 여러분, 이 미약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 많이 해주십시오』
이 사제의 말씀은 가끔 나의 마음속에 되새겨지곤 한다.
사제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솔직이 고백한 말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 일반 신자들의 삶에서도 더욱 뼈저리게 느껴지는 바를 시사하고 있기에 나의 마음에 늘 사무쳐지고 있는 것이다 사제보다 신심도 열고 수련도 부족한 우리 여린 평신도들이, 이 험악한 사회 속에서 살아 갈 때, 사제의 경우에 못지않은 괴로움을 겪지 않을 수 없다.
훌륭한 신자는 고사하고, 『저게 천주교 신자야』라고 손가락질이라도 당하지 않으려고만하는 데도 무척 힘이 든다.
우리 주위에는 평균해서 신자 한 사람에 20명 정도의 비가톨릭인이 신자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 이런 주위의 사람들 가운데는 우리의 행실을 보고 그리스도에 입교할 수도 있는 선량한 사람들, 말하자면 가톨릭에 대하여 관심과 호의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와 반대로 우리를 시험하려 드는 짖궂은 사람들. 모질게 행동할 수없는 선량한 신자의 약점을 이용하려드는 무지, 심지어는 온갖 죄악과 부정한 일에 동참하자고 유혹하는 일들도 있다. 성교회를 비방하고 신자들을 미워하고 모독하는 악의에 찬 반 종교주의자들도 없지 않다.
주님의 부르심을 먼저 받은 우리에게는 이 모든이들을 주님의 품안으로 불러들여야 할 의무가 주어져 있다. 주님께서는 가톨릭에 호의적인 이들뿐 아니라 악의에 찬 무리들에게까지도 예의없이 주님의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신다.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코16.15). 또 주님의 진리를 보지 못하고 죄악으로 물들어가는 세상 사람들을 염두에 두시고『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세상의 빛이다…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오 5.13~16)고 일깨워 주신다. 그리하여 교황 삐오 11세는『성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오직 그리스로의 왕국을 온 지구상에 확장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원 은총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라고 엄숙히 선언하였다. 더 말할나위도 없이 성교회의 일원인 우리 각자는 우선 이웃과 그리고 온 겨례를 성교회의 품안에 안아 들여, 진리의 빛을 깨닫고 구원의 은총을 함께 나누어야 할 중대한 의무가 있다.
그런데, 우리의 실제 삶은 어떤한가? 주일날이면 주님 앞에 꿇어앉아 주님의 충실한 자녀답게 살겠다고 되풀이 다짐하는 열심한 신자들 중에도、막상 사회 생활로 돌아서서 생존 경쟁에 휩쓸리게 되면 부지불식간에 신자인 것 조차도 까맣게 잊고 마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이 전혀 별개의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신자들도 있다. 성당에 나가면 교회 일에 앞장서고 유순하면 누가 보아도 모범 신자로 여길 만 하다.
그러나 사회생활에 접어들면 언제 내가 신자였더냐 하는듯이 표변해 버리고 만다.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기는 커녕 사회를 더욱 어둡고 병들게 만드는 일에 앞장을 서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이들에게 얼마나 큰 실망을 주겠는가? 더구나 짓궂은 사람들에게는 가톨릭을 공격하는 절호의 기회를 줄 것이다. 그러니 저들을 불러들이기는 커녕 멀리 내쫓고 있는 결과를 빚을 뿐이다.
이런 이들은 변명할지 모른다. 사회는 인심이 각박하고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신자라고해서 유순하기만 하면 사회의 낙오자가 되고 희생만 당하게 된다고 말이다. 물론 이런 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희생과 고통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을 생각할 때 우리도 무엇인가 희생과 괴로움을 각오해야만 저들에게 빛을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저들과 맞닥뜨려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서슴지 않고 조금도 희생을 바치지 않으려 한다면 신자아닌 사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또 어떤이는 사회가 험악하고 온통 썩고 병들었는데 우리 신자만이 고고한 삶을 펼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의 도시에 의인 10사람만 있어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상기할 때 우리 신자들만이라도 이 사회의 혼탁한 물결에 휩쓸리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만이 사회는 희망의 빛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참으로 살기 어려운 이 세상이며, 가톨릭 신자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살기는 더욱 어려운 세상이다. 그러나 희생과 고통을 무릅쓰고라도 이웃에게 관심과 사랑을 베풀고자 노력을 할 때, 비로소 주님의 나라가 임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 길이 험악한 만큼 우리의 힘만 가지고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선 우리가 최선을 다하며 힘쓴다면 그 풍부한 열매는 주님이 거두어 주실 것이다. 반면에 우리가 물러서서 자기 몸만 사린다면 자신과 사회는 다함께 희망의 빛을 잃고 말 것이라고 다시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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