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
장바구니를 들고 마루턱에 서면 메리놀수도원 까치 둥지가 있는 높다란 포플라나무 위에 붉은 노을이 탄다. 언제나 저녁 무렵, 물끄러미 이 마루턱에 서서 나 자신을 돌아다본다.
보잘것 없는 내 위에 항상 온화한 미소를 던져 주시는 성모님의 모습이 그리워 이곳에 오래도록 서있는 버릇이 몇 년째인가.
외짝 신자로 성모님을 뵙는 맘 죄스러워 미사 때마다 죄인처럼 부끄러운 나날들.
여고시절 영세 때의 그 뿌듯한 환희로 잠도 이룰 수 없었던 기억들. 그 후 한 남자의 아낙이 되어 문 턱 높은 개신교 집안을 들어서며 많은 갈등 속에서도 지금은 이렇게 홀로 들어서지만 언젠가 내 사람만은 분명 가톨릭신자 함께하리라 하는 두터운 신념 하나로 자신을 달랬었건만 난 언제나 빙빙도는 이방인. 일요일 오후 온 집안 식구들이 모이면 괜스레 딴 나라에 온 사람처럼 그분들의 대화 속에 동떨어져 나와 혼자 부엌에서 서성거렸다. 누가 뭐라하지 않아도 나의 신앙은 혼자 외로와 성호만 긋고는 하루하루 그렇게 침묵의 다툼을 하곤 했다.
그래도 기울어지지 않는 나의 신앙은 홀로 깊어가고 안타까움도 함께.
그 후 마음은 나날들을 새벽을 가르며 혼자 성당으로 향하는 마음은 모자람 투성이인 반성의 길이 아니었던가.
내일이면 또 내일이면, 우리 함께 성모님께 나갈 수 있을거예요 하는 되뇌임을 얼마나 수없이 반복했던가. 하지만 그 길은 그토록 어려운 길이었나, 아니 내 신앙심의 부족인가. 많은 자책의 시간들. 어제 새벽, 늘 그러했듯 조용히 대문을 열고 성당으로 향했다. 마치 식구들을 남겨놓고 조심스레 길 떠나는 여인처럼…
미사 때면 항시 그이의 얼굴위에 기도가 쏟아지고 그래도 대답 없음이 내 탓 같아 가슴엔 항시 돌이 고였었다.
그런데 미사를 드리고 성당문을 나서는 순간, 많은 교우들 속에 우뚝 선 한 사람의 미소가 있어 다시 한번 봐도 틀림없는 그이. 『봄 바람이 꽤 찬 걸』하며 어색하게 웃는 모습. 벅찬 느낌으로 고맙단 말밖에 더 이상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아 담 위에 걸친 물오른 나무들만 훑으면 집으로 돌아왔지만 가슴엔 출렁이는 은총이 가득 내렸다.『그래요. 우리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성모님께 다가가면 돼요…』가슴에선 방망이치는 환희가 간절한 기도되어 나오는 아침이었다. 오늘 저 수도원을 비껴지나가는 저녁햇살은 철이른 아카시아 향.
『…빛이 있어 혼자서도 풍요로와라
맑고 높이 사는 법을
빛으로 출렁이는 겨울 반달이여.』]
내가 좋아하는 이해인 수녀님의 싯귀를 읊으며 장바구니 가득 사랑 담으려 오늘도 이마루 턱을 지나간다. 부활의 기쁨 같은 이 충만한 가슴안고.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