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한여름은 일찍부터 찾아왔다. 지역에 따라 가뭄도 여전했고 비만 왔다하면 한꺼번에 3백㎜, 2백㎜씩 한 고장을 목표삼아 쏟아 부으니 물난리도 막심하다. 도저히 사람의 힘으론 어쩔 수 없는 조화(造化)인가. 해가 갈수록 삼복도 없어진 양 무더위는 미리부터 기승을 떨고, 몇 해 째 겨울도 겨울답지 않게 넘기는 계절을 겪고 있는 우리들. 세계가 모두 그런 것 같다. 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사람들이 맑고 푸른 자연환경을 갖가지 공해로 망쳐놓는데서 일어나는 변화라고 따끔하게 침을 준다. 그렇다면 인력으로 안 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노력으로 어느 만큼은 되돌릴 수 있는 일이다.
정치ㆍ경제ㆍ사회 등 모든 고뇌(苦惱)속에 허덕이고 있는 판국에 기상변화까지 용춤을 추듯 변덕을 부리니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어수선한 세월에 살고 있다.
날씨가 이쯤 무덥고 보면 가벼운 차림으로 어디로든 훌쩍 떠나고 싶은 심정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그렇다고 젊은이들처럼 함께 들떠 수선을 떨 수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가깝게 지내는 벗과 둘이서 천진 암을 찾게 되었다.
영원한 어릿광대처럼 어설픈 풋내기 신자인 나지만, 친구는 영세를 한지 얼마 안 되는 데도 내가 무색할 정도로 마음 깊은 정성으로 여러 일들을 꼼꼼히 살피며 배우며, 익히고 있다. 그의 그런 마음쓰임 덕분에 어느 무더운 날 천진암을 찾게 된 것이다.
이름조차『하늘의 참된 뫼』라는 천진산(天眞山) 아래 성조5위의 성현이 모셔진 천진암이다.
그날은 유난히 더웠다.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숲 아래, 골짜기에는 물 흐르는 소리가 시원하였다. 골짜기를 왼쪽으로 끼고 오솔길을 따라 산을 오르는 중턱 숲에서 우리들은 애릿한 수녀님 한분을 만났다.
넓은 바위에 턱 걸터앉아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지 아닌지, 그것까지는 살필 수 없었지만, 어떻든 차분하게 홀로앉아 책을 읽고 있는 옆엔 기타가 놓여있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때마다 춤을 추는 나뭇잎사이로 햇볕이 숨바꼭질 하듯 반짝 숨어드는 둘레는, 온통 짓 푸른 그늘뿐. 오뉴월 볕은 솔개만 지나가도 났다는데, 이 무더운 날, 나무숲아래는 얼마나 시원할까? 문득 부러운 생각이 들어, 금새라도 내려가 발을 담그며 동무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갈 길은 성현 5위의 참배가 우선. 무턱대고 시원함에 끼어들 수도 없기에, 고갯길에서 땀도 드릴 겸, 한숨 돌린다는 핑계로 목마른 시원함을 인사로 대신 달랬다.
『안녕하세요? 수녀님, 시원하겠습니다』 수녀님은 상냥했다. 푸른 숲 그늘아래 한가로히 노니는 스스로의 자리를 설명이라도 한듯, 며칠 동안 서울서 휴가를 왔다고 했다. 뜨문뜨문 참배객들이 보일뿐 인적 없는 호젓한 골짜기 숲속에서 맑은 물 바라보며, 기도하고 책 읽으며, 한숨 돌릴 땐 기타를 치는 수녀님의 모습이 청신(淸新)하게 보였다. 회색빛으로 찌든 도시의 마음이 오랜만에 맑은 솔바람 같은 풍정(風情)을 느껴보는 기분이랄까.
비대까진 안가더라도, 여름이면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이다. 거짓말 좀 보태면, 땀이 비 오듯 흐르는 터라, 그리 가파르지 않은 평편한 산길을 오르면서도 연신 부채질이 수선스럽다.
그 모습은 내가 생각해도 그리 보기 좋은 모양새는 아니다. 크게 시원할 것도 없는 그 작은 부채바람. 안부치는 것보다야 났겠지만 산이라는 의젓함 속에선 손놀림이 경망스럽다. 숲속의 은자(隱者)처럼 돌과 나무들과 바람과 물과 가락으로 휴가를 벗 삼는 수녀님의 여유 있는 분위기에 비해서도 말이다. 첩첩이 껴입은 김 검은옷 모습이건만 숲속의 풍경이 시원하니 함께 시원할 수밖에.
아닌게 아니라 성현 5위의 참배를 마치고 돌아내리는 길에 보니 수녀님은 독서삼매(三昧)에서 가락삼매로 옮긴 듯 가볍게 기타를 치고 있었다. 모처럼 한가로운 휴가이리라. 그러니 흥겨운 가락에 젖은 분위기를 깨지 말아야겠기에 얘기도 나눠보고 싶고 시원한 물에 발도 담그고 싶었던 오름길의 생각일랑 싹 접어두고 갈 길을 재촉하였다.
올여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TV뉴스조차 숨이 헐떡여질 지경으로 술렁이는 각박한 소식에 짜증스런 무더위가 방안하나 가득 밀려드는 밤저녁, 내일은 또 얼마나 더울까. 장마가 끝나지 않아 때도 없이 굵은 빗발이 줄기차게 퍼부어 시원할 것도 같은데 끈적대는 습기로 몸과 마음이 세상 움직임만큼이나 답답하다. 그나마 세월이 흐른 아파트마을에 사는 덕분에 둘레엔 나무숲에 푸르게 우거졌다. 넓은 공간에서 곱게 자란 잔디도 물 끼를 듬뿍 빨아들여 싱싱하게 윤기 도는 푸르른 눈요기가 구원이다. 후련하게 쏟아지는 빗줄기가 걷히면 검푸른 나뭇잎사이에서 빗소리만큼이나 요란하게 울어주는 쓰르라미소리가 메마른 도시생활엔 위안도 된다. 작년엔 가끔 매미소리도 끼어들었는데 올여름엔 어떨는지. 다만 강변로를 억세게 달리는 자동차소음이 기승을 떨 듯 무더위 속에 끼어들어, 벌레들의 합창을 짓누르는 데는 질색이다.
그러나 이런 짜증도 따지고 보면 사치한 생각. 수천세대가 사는 멋없는 콩크리트 건물 속에 앉아 푸르름 가득한 둘레에서 도시에선 듣기 어려운 쓰르라미, 매미소리를 들으며 여름을 보낼 수 있다는 것만도 고맙다. 또한 부숭부숭한 화문석 깔아놓고 따끈한 작설(雀舌)이나 난향차(蘭香茶) 몇 잔 마시며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역사소설이라도 들고 않아 읽는다면 굳이 야한 바다나, 수선스런 산을 그리워하지 않아도 되리. 옆에는 부치든 말든 실내장식의 소도구로 보이든 말든 고운 빛깔의 태극선쯤 몇 개 놓아두고 발코니에 매달린 풍경이라도 바람결에 울어준다면 그만이다. 풍류로까진 못간다 해도 여름날의 조촐한 풍정(風情)쯤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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