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강당에서「품바」라는 연극공연이 있었다. 다른 연극 공연때는 텅텅 비어있던 객석이 비교적 비싼 입장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성황을 이룬 특별한 공연이었다. 거지로 분장한 배우와 함께 마치 무엇에 신들린 듯 각설이타령을 합창하고 있는 관객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거지들의 무슨 단합대회에 끼여든 것 같은 착각마저 드는 것이었다. 세상변해도 참 많이도 변했다! 거지 떼는 얼마 전까지도 길흉사건에 무척이나 속 썩이는 무리였고 골치 아픈 종재였다. 왕초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춰 사례하고 대접을 잘하지 않으면 온갖 행패로 큰일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큰 불편을 주었었고 집 앞에 진을 치고 분위기를 잡치기가 십상이었다. 그런데 이런 기억이 미처 지워지지도 않았는데 비싼 돈을 내고 들어와 거지와 함께 손뼉치고 소리 지르며 신바람을 내고 앉아있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나도 덩달아 신명이 나는 것은 무슨 조화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면 나만이 그런 것이 아닌 모양이다. 어지간한 밤업소 영업집엔「품바특별공연」이라면서 거지가 등장해서 웃음을 선사하고 술 취한 취객들의 술맛도 돋구고 있으니 참 세상 많이도 변했다.
어디 그것뿐인가? 요즈음 뒤늦은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데 사람들은 이를 피해서 다리 밑을 찾아든다. 그늘이 있어 좋고, 거기에 물도 흐르고 자갈이나 모래까지 깔려있으니 피서하기엔 안성맞춤이다. 이곳 안동에도 댐 아래에 바로 붙어있는 다리가 하나 있는데 요즈음 많은 사람이 몰려든다. 그러다보니 아예 점심요기를 시켜주는 밥집도 생겨나고 가게도 등장해서 마치 시골 난장이나 선 듯이 무척 붐빈다. 햇보리 밥에 열무김치로 입맛을 돋구고, 수심 깊은 댐 밑바닥에서 흘러내려온 차디찬 강물에 더위를 식히면 피서치고 일등피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은 거지들이 집단으로 살던 바로 그곳이다. 비맞지 않는 콘크리트지붕에 가마니로 움막을 짓고 사는 이런 모습은 어디서나 쉽게 보던 모습이다. 거지가 아이들의 간을 빼 먹는다고 소문이 나서, 무섭고 두려워 모두 피해 다녔던 바로 그곳에 요즈음 우리는 아이들 데리고 피서를 다니고 있다. 세상 변해도, 참으로 많이 변했다.
「외제, 양종」하면 무조건 좋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요새와선「토종」그래야 제값을 받고「순토종」이 붙어야 인기 있는 세상이 되었다.
자! 그렇다면, 세상이 이리도 많이 변했다면, 문제도 그냥 넘길 문제는 아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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