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꿇림은 무릎을 꿇어앉히는 벌이다. 일종의 체벌(體罰)이지만 가벼운 체벌이랄 수 있다. 그것은 물리적인 힘이 외부로부터 가해지지 않는 체벌이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 서당에서 훈장어른한테서 회초리로 종아리 맞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요즈음은 교사들이 이것 때문에 홍역 치르는 일이 왕왕 일어난다. 그러나 아직까지「무릎꿇림」만으로 문제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어릴 적 한두 번 무릎 꿇고 벌 서보지 않은 경험은 아마도 드물 것이다. 요즘 아빠들이 아이들한테 관대함이 지나치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서양문화 영향인지 소가족제도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엄한아빠들이 자상하게변한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아이들 무릎 꿇려 보지 않은 아빠들이 그리 흔치는 않을 것이다. ▼무릎 꿇는 행위는 스스로 꿇는 경우와 꿇림을 다하는 경우로 구분된다. 전자는 잘못에 대한 용서를 청하는 행위 또는 윗사람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다. 후자는 잘못에 대한 처벌로서 징계와 굴욕을 뜻한다. 이같이 무릎 꿇음은 능동이냐 수동이냐에 따라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 ▼한때「선교사들이 성당 마룻바닥만 토착화시켰다」는 푸념이 있었다. 건물외형은 서양식인데 내부는 장궤틀과 의자가 없는 맨 나무 바닥 이어서 미사 때는 속절없이 무릎이 고생을 해야만 했다. 난로조차 없는 겨울철 미사참례의 고행은「성당 마룻바닥 토착화」를 원말 할만도 했다. 그 결과 손발을 동상(凍傷)에 걸리고 무릎은 궂은살이 박혔어도 신심만은 깊었다. ▼양복바지 구겨질까봐 성당 못 다니겠다는 예비자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공소의 경당 외에는 장궤틀과 의자를 갖추지 않은 성당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냉난방 시설도 완비되어 가고 있다. 미사 중 무릎 꿇는 일보다 편히 앉거나 아니면 서있는 경우가 더 많다. 20~30년 사이에 많이 변하고 편리해졌다. 그렇다고 하느님 앞에서 마음을 꿇는 행위까지 소홀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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