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88올림픽 개막 날이 며칠남지 않았다. 오랜 시간을 두고 정치경제 사회 혹은 교육과 사업 등 실로 그 모든 분야에서 그처럼 떠들썩했고 또 기대에 넘쳤던 그 축제의 날이 눈앞에 박두한 것이다.
「무슨 소리냐 떠들지들 말고 가만히들 있어. 이것이 어떤 큰 행사라고 함부로 까불어. 이것만 무사히 치르는 날이면 이 나라는 하늘에 닿게 된단 말야」
엄포와 속임수와 위협을 두루 섞어서 그럴듯하게 누가 버티고 서서 이런 호통을 치는 소리가 아직도 들려오는 것만 같다.
허나 그간의 곡절이야 어찌되었건 이른바 세계의 스포츠축제는 불행하게도 북한의 참가는 없는 채로 열리게 된 것이다.
자, 이 올림픽이 과연 무엇이냐 날마다 대신문들이 대서특필로 앞으로 진행될 행사의 각종 내용과 순서를 마음껏 소개하는 이 축전이 우리민중에게 과연무엇이 우리민주에게 있어 과연 무엇이냐.
통장은 반을 돌면서 집집마다 청소를 깨끗이 하고 적어도 올림픽기간 동안은 쓰레기를 함부로 밖에 내놓지 말라는 당부를 하였다.
적어도 한국을 찾는 이역만리 외국손님들에게 좋은 인상을 줘야지 조금치라도 언짢은 준대서야 되겠는가 라는 주석을 달아서 주민들의 경각심을 돋구고 갔다.
지금부터 16년 전 7ㆍ4남북공동성명 때 북한사람들이 서울에 온다고 해서 그 때도 이런 당부를 들은 것 같거니와 한 가지 생각나는 것은 혼자 사는 옆집 할머니가 불록 담 위의 녹 쓴 가시철망을 뜯어내며 볼멘소리를 하던 일이다.
『이북 손님이 오는데 철망 줄은 뭣 땜에 뜯으라는 건지 나 원 참 이러다 도둑이 들면 난 어찌라고 이러는지 모르겠당이』하던 불평인 것이다.
이북 손님들이 집집마다 가시철망 친 것을 보면 어찌 생각할지 모를 일이니 미관을 위해서 그때는 관에서 이런 긴급조치를 내렸었다.
이번에는 이런 당부까지는 없는듯하나 길거리에서 빵을 굽거나 포장마차를 하는 영세민들은 아무래도 큰 타격이 예상되며 시장바닥의 노점들도 적지 않은 간섭을 받을 것이 예상된다.
멀쩡한 보도블록을 연일 걷어 내고 새것을 깐다. 깐지 1년도 채 안되어 이것을 걷어내는 것이니 길을 지나며 하도 딱하여 한참씩 잡부들이 땀 흘리며 일하는 것을 바라다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낭비가 어디 있는가. 이 같은 낭비가 다 극상으로 걷어 들이는 국민의 세금에서 빠져나가는 것이요 무슨 일 한 가지만 하는걸 보고 있어도 그저 임시방편 식으로 보기 좋게만 꾸며 놓는 망국행정을 하는 것 같아 한심한 생각이 든다.
우리 동네에서는 수돗물이 잘 나오지 않아 가끔은 라면 한 봉지 끓이지 못하는 가구도 있건만 수도과에 진정한지 반년이 넘어도 소식이 깜깜이다.
국민들의 불편이나 고충은 아랑곳없어도 덮어놓고 외국서 구름처럼 몰려들어온다는 그 손님들에게만은 잘 보이겠다고 갖은 성의와 열성을 다 발휘하는 이 무더운 여름은 행운의 계절인지 혹은 액운의 계절인지 도대체 정신이 멍멍한 판이다.
누가 5백원짜리 올림픽 기념주화 하나를 놓고 갔다. 이것도 여간해서는 구하기 힘든 것이란다. 그러나 이것이 무슨 뜻이 잇는 것인지 생각하면 쓸쓸한 생각밖에 들지 않는 터다.
그야말로 총력을 기우려 준비했으니 올림픽을 치르고 나면 무슨 좋은 수가 나기는 날 것이다. 필자는 되도록 그것을 믿고 싶고 또 그렇게 바래야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올림픽이다 하여 이른바「국풍」에 함께 떠들석 놀아나는 것은 좀 낫게 사는 층과 부자님들이지 생활에 쫓겨서 경황없는 소시민과 가난한 기층 민중들은 전혀 반응이 없다. 반응이 없을 정도를 넘어서『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판에 이 나라에서 올림픽이 다 무엇이냐. 빨리 지나가 버렸으면 속 시원하겠다』는 소리도 결코 없지 않은 것 같다.
이 큰 행사가 무사히 끝나 엄청나게 큰 달라 돈이 떨어진다고 하자. 그렇다한들 그것이 먼지 모양으로나마 흩어져 우리 서민대중의 주머니에까지 당도하게 될까.
5공화국비리를 보면 전씨네 몇 분이서 이 나라의 돈이란 돈은 불과 몇 년 동안에 거의 다 잡수어 버릴 뻔 하였는데 이번에는 또 어떤 실력자나 재벌이 이 흥행흑자를 한 입에 삼켜 버리게 될지 그것을 점쳐 볼 혜안은 아무도 갖고 있지 못한 듯싶다.
소설가 ㄹ은 아침저녁으로 전화를 걸어서 준비는 다 되었느냐고 벌써부터 독촉이 성화같다.
뭐냐하면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은 모든게 꼴 보기 싫고 시끄러워 못살겠으니 보따리를 싸 걸머지고 무작정 이 소란스런 서울을 벗어나자는 계획에 동참을 구하는 전화인 것이다.
서울을 벗어나는 것이야 찬성이지만 갈 데가 마땅치 않아 필자가 머무적거리고 있음에 ㄹ은 계룡산은 미군의 핵 기지 때문에 갈수 없고 역시 지리산밖에 없으니 준비를 서두르라는 분부시다.
여유가 있다면야 임시망명 비슷한 행차니만큼 이 의기 상통하는 작가와 더불어 아프리카나 인도쯤 가는게 좋겠으나 그건 생각뿐이고 우리들의 팔자에는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분전고원 다 놓아두고 그저 만만하게 드나들 곳이 지리산의 그윽한 운무 속밖에 없나보다.
답답하구나. 갈려고 해도 못나가는 이 땅의 산천과 수많은 길들-언제까지 꼼짝도 못하고 이 좁은 남녘땅에 갇혀서 신음해야 하는 것이냐.
묻노니 호돌이 올림픽이 무사히 끝나기만 하면 통일도 된다는 것인가. 평양을 보기 좋게 소외시켜 놓고 서울에서 이 놀음을 펼치게 됐다고 기고만장안심해도 좋을 것인가. 민족화합이 이뤄진다고 우쭐해도 괜찮을 것인가.
금가는 소리가 자꾸만 들려오는 것만 같아 탄식이 저절로 나온다.
형제가 손잡는 일이 더 급하지 그까짓 외국손님접대쯤이 무슨 그리 큰 경사기에 모두들 기세를 올려서 이 야단들인지 화를 못 견뎌서라도 어서 지리산이고 한라산이고 정치 없이 길을 떠나야할 것 같다.
보지 않으면 된다. 우리가 진실로 해야 할 중대한 민족적 과제를 제쳐 두고 이런저런 협조(구경해 주는 것도 협조다)를 하는 것은 적어도 이 땅 지식인의 양심으론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데가 있어 보인다.
빨리 끝나거라, 호돌이 88. 그러나 대과는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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