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신분이 사제인지라 사람들과 늘 함께 하면서도 구별될 수 밖에 없는 묘한 위치에서 늘 서성일 때가 있다. 그러나 그들과 아픔과 기쁨을 함께 하노라면 그들 중의 내 모습이 선명히 떠오른다.
무례하지만 하느님도 내 주변인물로 꼽는다면 가장 비중있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우리 모두가 일치와 불화를 반복하며 함께 고통을 나누지만, 이것은 사랑하기 위한 진통이라고 나 스스로를 위안해 본다.
주변사람 몇을 꼽아보자. VIP이신 하느님, 그 분은 내게 있어선 언제나 부모님처럼 지그시 지켜보는 분이시다. 그 분은 내가 어느 정도 견딜수 있는지 알고계신 분 이시다. 이리저리 길 옆으로 벗어나려 꿀꿀거리는 나를 어르기도 하시고 채찍질도 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의 눈길은 어디서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감시자가 아니라 항상 돌아가고 싶은 든든하고 포근한 나의 안식처이다.
K신부. 그는 내 동창 신부다. 서로 무엇을 원하는 잘 알고 그러면서 이해하는 동료이상의 신부다. 그는 모든 면에서 나와는 정반대의 이미지를 풍기는 사람이지만, 항상 내 주변에 자취를 남기는 사람이다.
내가 갈등에 있을 때 인연을 맺은 L중령 부부, 그들은 훌륭한 신자로서 군종 사목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한가지 인상깊은 사건이 그들과 더 가깝게 했다. 그들은 딸 셋을 낳고도 섭섭함을 숨기고(?) 행복하게 사는 부부다. 그 이름이 가연이, 나연이, 다연이다. 그런데 아들 낳고 싶어 한 아이를 잉태했으나 낳고 보니 또 딸이다. 부인은 밤낮을 눈물로 지냈는데, 어느날 L중령이 내게 고민을 털어놨다. 다름 아니라 그때를 즈음해 이상하게 술 마실 일이 생기더라는 것이었다. 본의아니게 며칠을 술 마시고 늦게 들어가니 부인쪽에선 딸 넷 낳으니 이모양이라며 관계가 냉랭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부부를 태우고 보름달 휘영청 뜬 경포 호숫가에 갖다 버리고 왔었다. 다음날 표정을 보니 O.K!
H신부님. 기도하는 사람, 헛 발 짚는 사람, 또한 의리의 사나이다. 술 좋아하는것이 흠이라면 흠이나, 풍류를 즐길줄 아는 것으로 생각하면 그럴듯도 하다. 언제나 형님처럼 자상하게 나를 보살펴 주신다. 훈련소에서 꼬기꼬기 구겨진 만원권 몇장 쥐어주며 외출 잘갔다 오라하시던 그분에게 무한한 정을 느꼈었다. 항상 나를 생각해 주시는 그분의 사랑이 매일 매일 새롭다.
어찌 이들 뿐이겠는가! 이 글을 강제로 떠 맡겨 고민으로 몸무게를 줄여준 털털한 N기자 등등… 그밖에 많은 사람들이 차창밖의 가로수처럼 나를 스치고 간다.
사람은 사람과 함께 있을때 비로소 사람이라고 M. 부버는 말했던가? 사람이란 이름으로 말갛게 여과되어 생명의 포도주를 나누어 주는 그들과 이봄의 신선한 향기를 같이 마시고 싶다.
벗이여!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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