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부활절은 바로 4ㆍ19의거 27돌과 겹치는 날이었다. 수유리 4ㆍ19묘지 뒷산에는 어김없이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그러나 묘역에 누운 젊은 영령들은 살아 일어나지를 못한다. 다만 그들의 무덤 사이 사이의 잔디에 모여 앉은 젊은이들이 요즈음 학원가 시위 때 부르는 노래들을 부르다가 그치고, 그쳤다가 또 부르며 앉아 있었다.
이 젊은이들이 이날 오후 4시 반경에는 무려 3천여명의 무리를 지어 일어나서 가두로 몰려나오며「민주 쟁취」「독재 타도」를 외치는 시위를 벌였고, 대기 중이던 경찰 2천 5백여명이 32연발 다탄루 최루탄을 집중 발사하여 시위 군중을 해산시켰다.
이러한 일이 마침 부활주일에 일어남으로써「부활과 국가 현실과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새삼 동감하게 했다. 그리고 시국에 대한 이러한 성찰은 무엇보다도 김수환 추기경의 금년「부활절 메세지」가 일으키고 있는 파문 때문에 더욱 절실해지는 것이기도 하다.
교회 내에서도 여론의 자유로운 형성은 바람직한 것이라고 교황청 매스컴 훈령인「일치와 발전」이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시국 현실에 대한 가톨릭 교회내의 견해들에 어느 정도 불일치가 있을 수도 있다. 최근에는「가톨릭 농민회」「평신도 사도직 협의회」「가톨릭 학생연맹」등의 활동에 대해 교회 지도부로부터의 자제 지시가 있었음이 사회 각 신문에 보도되었다. 이 현상에 대해 사회의 비신자 지식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그 속사정을 궁굼해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김추기경의「부활절 메세지」가 정부의 4ㆍ13 호헌 조치에 대해 선명한 비판적 지적을 가한 것이 또한 사회 신문들에 보도되어 일반대중이 또 다른 반향을 나타냈다.
이렇게 된 계기에 도대체「부활신앙과 국가 현실과 그리스도인의 사명」사이에는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에서 가톨릭 신자의 수는 전체 국민의 5% 남짓한 적은 수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197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주요한 격동적 국면이 벌어질 때면 국민이 이목이 가톨릭교회로 쏠리는 일이 자주 있어 왔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 국민의 이목은 또한 김수환 추기경의 어떤 견해 표명들에 쏠리곤 했다.
가톨릭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의 이러한 사회적 비중은 근본적으로 제2차「바티깐」공의회의 정신이 한국교회에서 구현되기 시작한데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교회가 시대의 대표적 징후를 알아야하고 사회에 참여해야 한다는 자세가 정립되기에 이르렀다.
제2차「바티깐」공의회의 이후 가톨릭 교회의 대사회 원리들은 현대 세계의 온갖 분야에 구체적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특히 인간 존엄과 정의ㆍ평화의 구현에 힘써오고 있다. 한국의 해방 후 역사는 외세에 의한 민족 분단과 친일파의 재기용 및 반민주 독재화의 탁류에 휘말려 사회적으로 양심의 중심세력이 형성되지 못해왔다. 그러다가 1960년의 4ㆍ19 의거로 제2공화국이 출현한 때로부터 가톨릭의 사회참여가 시작되어 1970년대부터 가톨릭의 정의 구현 운동은 반 독재 민주화 운동의 한 주요한 거점이 되어 오고 있다. 제3공화국의 이른바 유신체제가 출현하던 1972년의 부활절과 성탄절에 김수환 추기경이 발표한 메시지와 강론은 당시광야에서 홀로 외치는 예언자의 준엄한 정의의 목소리였다.
『이처럼 어둡고 침체된 우리 겨레와 사회를 위해 특히 이 난국에,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겠읍니까? 교회도 무사와 안일을 위해 침묵을 지켜야 하겠읍니까? 또는 위정 당국이 하는 일에는 무조건 찬동하고 따라야 하겠읍니까? 아니면 정부와 국민 간에 깔려있는 이 깊은 위화감, 사회 각계층과 국민 상호간에 놓여있는 불신감을 해소하는 보다 적극적인 일을, 경우에 따라서는 있을 수 있는 어떤 모험을 무릅쓰고라도 해야 하겠읍니까? 어느 것이 이 시점에서 국가와 사회를 위해 교회가 봉사할 수 있는 길입니까? 어느 것이 인간과 인류 구원을 위해 수난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닮는 길입니까? 부활 즉 소생의 증거자로서의 교회의 사명은 명약관화합니다. 교회는 설교만이 아니라, 행동과 실생활을 통하여 부활의 성촉,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라의 빛을 성당 안에서만이 아닌 모든 국민의 마음과 이 사회의 어두움 속에 밝혀야 하겠읍니다.』(김추기경의 1972년「부활절 메시지」에서).
이미 15년 전에도 김수환 추기경은 부활 신앙의 현실적 의의에 대해 이렇게 갈파한바 있다. 그 해 성탄절 강론에서도 추기경은 유신체제와 비상 조치법이 국가안보를 위해서라기보다 정권 안보를 위한 것이라고 질책했었다. 그때 이 정의의 외침을 듣고 반성을 했더라면 유신체제의 그 비극적 최후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제5공화국 정권의 4ㆍ13개헌 중단 조치에 대해서도 김추기경은『4ㆍ13으로 다시금 최루탄이 그칠줄 모르고, 국민의 눈과 마음속 깊은 곳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게 되었다. 이제 민주화와는 거리가 먼 전제가 시작되고 이 어둠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예측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또 『그 무엇도 인간다운 삶, 정의, 진실을 포기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그는 말한다.
실로 「부활」은 개인적인 구원이라기보다 「죽음에 대한 사랑의 승리」이며, 하느님의 인류 구원의 역사에 믿음을 갖고 참여하는 것이 곧 부활의 성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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