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양씨의 귀가를 확인이라도 하겠다는 듯 남수는 계속 벨을 눌러댔다. 시간으로 보아 양씨의 두 아이들이 안에 있을게 분명한데도 안에서는 죽은 듯 기척이 없었다. 그만큼 벨을 눌렀으면 지겨워서라도 누구냐고 물어올 법도 한데, 현관문 저쪽은 전연 감감이었다. 가출한 양씨가 오늘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생각이 예감처럼 느껴져, 남수는 분풀이하듯 또 벨을 눌렀다
주머니에 열쇠꾸러미가 있었지만 오늘따라 여러 개의 열쇠를 다 여는게 번거롭게 느껴져 그는 고집스럽게 벨을 누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은희 이 녀석, 집에 있는지 다 알아. 옆방 아저씨니까, 어서 문 열어!』
문 저 편의 끈질긴 침묵에 견디다 못해 그는 마침내 주먹으로 문을 쾅쾅 두드리며 고함을 질렀다
『옆방아저씨면 열쇠로 열고 들어오면 되잖아요.』
그제야 아이가 문 바로 앞에 다가와 메마른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이의 물기 없는 목소리에 손만 내밀면 닿을 아이와의 거리가 갑자기 아득히 멀게 느껴지면서 온몸에 맥이 풀려버렸다.
예외란 있을 수 없었다. 이사한지 한 달이 지났어도 무슨 사람들이 문 한번 열어 주는 법이 없었다. 안에 사람이 있다 해도 벨을 누르는 건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했다.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외인들이 그러하듯, 열쇠가 없으면 문안으로 들어설 수가 없었다. 열쇠가 이 집 식구라는 유일한 증거라도 되듯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들에게만 그들은 가족으로서의 관심을 표시해 보이는 것이었다. 하긴 셋방살이나 하는 주제에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고 해서 이러니 저러니 하는 것도 주제 넘는 일이긴 했다.
그 문 앞에 설 때마다 매번 색다른 기대로 벨을 눌러보곤 했지만 예외가 없음을 확인시키는 공허한 답신만을 보내올 뿐이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열쇠꾸러미를 꺼내 분노가 내리 뻗치는 손으로 열쇠구멍에 열쇠를 꽂았다.
『이 방이오.』
주인인 양씨가 남수의 아래 위를 훓으며, 주방 옆에 있는 문을 열어 보였다.
『무엇보다 방이 아늑해서 좋군요』
창 앞쪽에 건물이 바짝 붙어있어 방이 어두웠으나 오히려 그게 남수의 마음에 들었다.
복덕방에서 방이 있다는 얘길 듣고 남수는 무조건 짐을 싸들고 이사를 했다. 세 들어 있던 집이 팔려 급히 방을 구해야 했었기도 하지만 장사하는 사람들이라 밤에만 집에 있다는게 마음에 들어 놓치기가 싫었던 것이다.
양지 연립주택 302호에 있는 그 방은 남수가 가진 약간의 책과 옷, 침구와 소지품 몇 가지를 들여놓으면 다리도 편히 뻗고 잘 수 없을 만큼 비좁았으나 와보니 방이 아늑해서 이사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학교에 다닌다는 양씨의 두 남매가 신기한 듯 남수의 거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누이인 여자아이는 그 나이로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비대한 몸으로 소파에 거의 눕다시피 앉아 있었고 사내아이는 책 한권 날라주지 않으면서 그의 뒤를 졸졸 따라 다녔다.
『이제부터 이게 김군 열쇠예요.』
남수가 마지막 남았던 책 보따리를 가지러 나가자 양씨가 현관문 밖에 서 있다가 여러 개의 열쇠가 주렁주렁 달린 열쇠꾸러미를 내보이며 말했다.
『아니 웬 열쇠가 그렇게 많습니가?』
남수는 양씨가 그의 집 장롱열쇠까지 건네주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면서 물었다.
『이게 모두 김군거요. 내가 이 열쇠들의 용도를 가르쳐 줄테니 잘 기억해 둬요』
양씨는 열쇠구멍이 마마자국처럼 덕지덕지한 현관문 앞에 남수를 세워놓고 열쇠를 꽂아나갔다.
『이건 김군방 열쇠니까 볼 것도 없고 우선 이걸로 여기 맨 위를 연 다음 그 다음엔 요걸로 맨 아래 요기 또 그다음엔 이걸로 그 위, 그다음엔 위에서 두 번째, 그다음에 이걸로 가운데를 연 다음 손잡이를 비틀면, 이렇게 열린 다이거야』
문은 쉽게 열렸다. 그러나 남수는 그 순서를 미처 기억하지 못하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고만 서있었다. 그에게는 그 순서가 도무지 기억할 수 없을 것처럼 복잡해보였다.
『젊은 사람이 기억력이 그렇게 없어야 원』
양씨는 쯧쯧 가볍게 혀를 차며 다시 열쇠를 구멍에 꽂아 돌리기 시작했다.
『자, 이건 여기 맨 위구, 이거는 요기 맨 아래, 이거는…』
갑자기 한 치 두께의 작은 문이 거대한 성문처럼 육중해 보였다. 문은 완강히 거부하는 몸짓으로 그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에겐 그 수많은 자물쇠로 무장한 현관문을 여닫고 드나들 일이 두렵게 느껴졌다.
양씨는 남수가 듣고 있건 말건, 오랫동안 반복해왔을 기계 같은 솜씨로 다시 문을 열어 젖혔다.
『자-이제 알겠소?』
양씨가 남수를 돌아보며 물었다. 남수는 양씨가 그럼 자네가 한번 해 보게 하고 주문해 오지 않기를 빌면서 예라고 대답했다.
『그럼, 이제부터 이 열쇠는 김군거요.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양씨는 남수의 손바닥에 열쇠꾸러미를 내려놓고 집안으로 사라졌다. 손에 금속성의 묵직한 중량을 느끼면서 남수는 문 앞에 서있었다.
『문 닫지 않고 뭘해요? 빨리들어 와요』
안에서 양씨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그는 남은마지막 책 보따리를 들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뒤에서 현관문이 다시는 열리지 않을 듯이 철컥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두 아이는 달려들듯 다가서며 씩 웃었다. 문 이편의 그에게는 모든 경계심을 버리고 우방으로서의 친밀감을 표시해 오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느끼게 되는 당혹감으로 남수는 신발도 벗지 않고 선채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야, 은희 정호, 이리 와봐.』
남수는 소파에 가서 털썩 주저앉으며 두 아이를 불러 앉혔다
아이들이 여전히 피식피식 웃으며 앞에 와 앉았다.
『너희들, 아직도 아저씨 목소리 몰라?』
남수는 답답하다는 얼굴로 두 아이에게 물었다.
『알아요!』
여자아이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며 대답했다.
『아저씬 줄 알면서도 왜 문을 안 열어주지?』
『아저씨한테 열쇠 있잖아요. 엄마가 열쇠 있는 사람은 들어오고 없는 사람은 우리식구가 아니니까 못 들어오는 거라고 그랬어요.』
사내아이는 남의 집 규칙을 깨뜨리려는 남수가 못마땅한지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
남수에게 방을 세 놓았다는게 이상하게 느껴질 만큼, 양씨네는 밖의 세계를 경계하고 있었다.
『누가 초인종을 눌러도 확인하기 전에는 절대로 문을 열어선 안돼요. 집안에 들어오면 빗장을 모두 잠그고, 수금원이오면 무조건 일요일에 오라고 해요. 그리고 응접실에 나와 있지 않을 때는 절대로 베란다의 창문을 열어놓아선 안돼요』
이사한 후 며칠 동안 남수는 매일 똑 같은 얘길 반복해 들어야했다. 그것은 세뇌교육이었다.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된 남수가 그 주문을 거뜬히 외워 보이고 나서야 양씨는 물러섰다.
남수는 두 아이를 설득해 보고 싶었다.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문을 열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 역시 너희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을거야. 너희들이 믿지 않는데 남들은 어떻게 너희들을 믿어 주겠니?』
『…』
『앞으로 아저씨가 벨을 누르면 문을 열어주기로 하자, 그리고 너희가 학교에서 돌아올 땐 아저씨가 문을 열어 주는 거야 응?』
『…』
두 아이는 음모를 꾸미듯 서로 마주보며 눈짓을 교환했다. 두 아이 사이에 오가는 은밀한 시선을 감지하며 남수는 이유를 알 수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엄마한테 혼나요.』
여자아이가 남수 쪽으로 돌아앉으며 잘라 말했다. 사내아이는 몹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어른처럼 팔짱을 끼었다.
남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엄마한테 얘기하지 않으면 될 거 아냐?』
그러나 아이들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들은 자르듯 단호했다.
『안돼요!』
남수는 어깨에 맥살이 풀려 소파에 몸을 깊이 파묻으며 드러누웠다.
『그래 싫으면 그만둬라』
아이들은 대개 오후 세시쯤에 돌아왔다. 여자아이는 비만증으로 헉헉거리며 계단을 겨우 올라와 문을 열로 들어서자마자 고꾸라지듯 소파에 주저앉고 사내아이는 냉장고 문부터 열어 젖혔다. 여자아이가 땀을 씻기 위해 욕실에 있는 동안 사내아이는 집안을 설치고 다니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마룻바닥에 장난감을 있는 대로 늘어놓기도 하면서 쉬지 않고 먹어댔다.
『정호야 조용히 좀 해 아저씨공부하시잖아』
여자아이가 대견스럽게 가끔 남수 걱정을 해 주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아이들은 밖에도 나갈 줄 모르고, 하루 종일 집안에서만 벌레처럼 꼼지락거렸다. 그들에게는 현관문밖계단 그 아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금지구역이었고 문안의 세계만이 그들의 보호구역이자 안전한 활동무대였다. 사내아이의 지나친 장난이나 식욕도 어린애로서는 감당해내기 어려운 제한된 공간이 가져다주는 무료함과의 싸움인 셈이었다.
아이는 지루하면 제 누이에게 방석을 집어 던지거나 머리를 잡아당기면서 놀이 상대가 되어주길 유도해 보기도 하지만 여자아이는 제 몸 하나 가누기도 벅찬 듯 눈만 껌벅거렸다.
그러다가 누가 밖에서 초인종을 누르기라도 하면 두 아이는 갑자기 숨을 죽이고 잔뜩 겁먹은 얼굴로 마주보면서 벨을 누르는 사람이 지쳐서 돌아갈 때까지 꼼짝도 않는 것이었다.
그사이 두 아이가 온 공간에 쳐놓은 긴장의 그물은 손만 대도 끊어질듯 팽팽하게 늘어나 바르르 떨고 있었다. 벨소리가 그쳐야 아이들은 다시 자기가 하던일로 되돌아가 책을 읽다 지친 여자아이는 자기 몸만큼 큰 곰 인형을 안고 멍하니 창밖이나 내다보고 사내아이는 먹을 것이 바닥이 날 때까지 냉장고에 매달려 있다.
양씨 내외는 평화시장에서 옷 가게를 하고 있었다. 새벽 4시에 양씨 처가 먼저 나가 물건을 떼어놓고 가게를 보다가 오후에 양씨가 교대를 했다. 그러자니 부득이 아침은 양씨가 짓고 저녁을 그의 처가 짓기 마련이었다. 그 손바닥만한 가게를 왜 부부가 교대까지 해가면서 매달려야 하는지. 남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손님이 붐비는 것도 아이어서 양씨는 가게를 보고 처는 집에서 살림을 해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불변의 법칙이라도 되듯 그 틀 같은 일상을 반복해 나가고 있었다.
남수가 정상적인 시간에 잠을 깨는 날은 맨 먼저 아침을 짓고 있는 양씨와 마주치기 마련이었다. 양씨는 잠옷 바람으로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앉히고 저녁에 처가 손질해 놓은 찌개거리에 물을 부어 불에 얹고 그 찌개가 넘치지 않도록 다 끓을 때까지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조리대 앞에 서있었다. 어쩌다 남수와 얼굴이 마주치면 그는 얼굴을 묘하게 일그러뜨려 웃어보였다.
남수와 얘기를 나누는 아주 짧은 시간을 제외하고는 양씨의 표정은 음지식물처럼 늘 생기가 없었다.
『사업을 하다 망했지. 지금의 옷 가게도 처가에서 내준거야.』
언젠가 양씨가 남수에게 한 말이었다. 그 한 가지 이유가 그에게서 생의 의욕을 송두리째 빼앗아 갔는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그는 삶이 무슨 큰 짐이라도 되듯 양어깨를 늘어뜨리고 다녔다.
찌개가 다 되면 양씨는 아이들을 깨워 세수를 시켰다. 아이들이 세수를 할 동안 그는 상을 차리고 아이들의 도시락을 쌌다. 그리고 아이들이 미처 챙기지 못한 책가방을 살펴주기도 하고 여자 아이의 머리를 빗겨 단정하게 묶어 주는 것이었다.
그러는 그의 동작들은 너무도 익숙하고 자연스러워서 구렛나루의 시커먼 턱과 껑충한 키와 대조를 이루면서 섬찟 낯선 인상을 주었다.
한차례 소란을 피우던 아이들이 학교로 가기위해 문을 나서는 기척을 들으면, 남수는 혼자 방긋이 웃곤 했다. 아이들이 나가면 양씨가 달그락거리며 설거지 그릇을 모아 개수통에 담그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 훨씬 경쾌해진 발걸음으로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방을 나온 양씨가 욕실로 들어가고 곧이어 언제나처럼 물소리가 요란하게 나면서 어김없이 오동동타령이 뒤따랐다.
아이들이 학교로 가고난 뒤 그만의 시간이 되면, 그는 벌거벗은 몸으로 방을 나와 욕실로 들어가곤 했다. 욕실 안에 있는 동안만은 도부지 그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활기찬 목소리로 아무 거리낌 없이 몇 번이고 반복해서 노래를 불렀다
견디다 못한 303호의 여자가 짜증을 내며 아무리 현관문을 두드려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침마다 역할을 바꾸어 처대신 조반을 짓고, 주눅이 들어 기를 펴지 못하는 그에게 그런 구석이 있다는게 처음엔 그렇게 유쾌할 수가 없었다. 언젠가는 그가 그 음울한 음지에서 과감히 뛰쳐나와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가 남수를 즐겁게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욕실 문을 열어젖히고, 패기 넘치는 그의 모습을 확인해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러나 욕실 문을 나오면 그는 언제나 처럼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의 간식을 준비하고 기껏 객기처럼 남수에게 자기자랑이나 늘어놓을 뿐이었다.
『나도 대학 다닐 땐 꿈이 많았지. 젊어서 자네처럼 고시패스를 꿈꾸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지금은 이 모야이지만 그때는 꽤 당당했다구.』
그가 욕실에서 나올 때마다, 이제는 밖에서도 안에서처럼 패기 있게 나오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번번이 무너지곤 했다. 그래서 남수는 그런 양씨의 허언에는 그만 신물이 난 터였다.
『그런데 지금은 왜 그렇게 나약하십니까? 오히려 아주머니가 가장 같으시니 말입니다』
『이 사람, 나약하긴 누가, 그래도 이집 가장은 어디까지나 나라구, 나』
그러나 허풍을 떨던 그도 처 얘기가 나오면 갑자기 목소리에 자신을 잃고, 책꽂이에서 슬그머니 책을 빼들며 딴전을 피웠다. 그 때부터는 마음을 꽉 닫아걸고 남수가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정오까지 그렇게 소파에 길게 누워 책을 읽다가, 점심을 먹고, 어깨를 잔뜩 움추려 구부정한 모습으로 문을 나섰다. 남수에게 어김없이 당부의 말을 남기고
『문단속 잘 하게』
하루 내내 그 집을 혼자 지키게 되리라던 복덕방 부인의 말과는 달리, 집안에 남수 혼자 있는 시간은 양씨가 나가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까지의 세 시간 정도뿐이었다. 혼자 있다고 해서 특별히 하는 일은 없지만 그 시간이 그에겐 더없이 귀중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돌아오면 벌집처럼 소란스러워지는데다 4시가지나 양씨처가 들어오면 매사에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에 그 시간만이 그에게 있어 완전한 자유시간이 되는 셈이었다.
양씨 처는 저녁을 지어먹고 나면, 초저녁 때부터 바로 잠자는 시간이었다.
새벽에 가게에 나가서 위해서는 그 시간에 자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양씨의 귀띔이었었다. 그때부터 남수의 행동은 극히 조심스러워져 문을 여닫을 때나 걸음을 옮길 때도 조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녀의 잠을 방해하는 어떤 행동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경고를 양씨로부터 여러 번 들었던 것이다.
일요일엔 양씨내외가 모두가게를 쉬었으므로 더 소란스러웠다. 일요일만 고대하던 갖가지 수금원들이 의기양양해서 드나들고 볼륨 높은 음악이 계속되었다. 양씨 처는 집안을 쿵쾅거리고 다니면서 아이들의 장난에 맞장구를 치고 하루 종일 먹을 걸 만들어내고 시장에 들락거리면서 무엇인지 자꾸 사들였다.
느지막히 일어난 양씨처가 조반을 짓고 그 날만은 양씨도 밥아비 노릇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대신 속옷 바람으로 집안을 돌아다니거나 욕실에서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활기찬 양씨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단정하게 옷을 입고 들어갔다가 물소리만 찰박 찰박 내며 목욕을 마치고나서 다시 단정한 옷매무새를 하고 나올 뿐이었다. 그런 날 양씨는 눈에 띄게 말수가 적어지고 이젠 남수에게 말을 놓을 만큼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었으면서도 내내 말 한번 걸어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처가 말을 걸면서 대답하고 때가되면 식사하고 표도 나지 않게 한쪽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책이나 신문을 뒤적이다 잠이나 자는게 일이었다.
그런 날은 남수도 방안에만 틀어박혀 진종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집안의 가장인 양씨가 집을 나갔다. 남수가 방을 얻고 한 달이 조금 지난 뒤의 일이었다.
가게에 나가면 대개 자정이 다되어 돌아오곤 하던 양씨가 그날은 웬일인지 나갔다가 바로 되돌아왔다. 무슨 일로인가 그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면 남수는 방에서 나와 집안의 창문을 모두 열어놓곤 했다. 집중력 때문에 외진 방을 골라 다니는 그이긴 했으나, 응접실의 커다란 창에까지 언제나 커튼이 드리워져 있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외출하지 않는 그였으므로 그는 창을 통해 밖의 세계와 접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넨 언제나 그렇게 문을 다 열어놓고 있나? 처음에 문을 절대 열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
남수가 얼른 창틀에서 내려서며 어떻게 일찍 돌아오게 되었느냐고 물었으나 양씨는 그 말에는 대꾸도 않고 되물었다. 그리고 남수가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안방 문을 쾅 닫고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남수는 도로 창을 닫고, 커튼을 내리고 자기의 방으로 돌아갔다. 집안이 갑자기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의 침묵에 짓눌린 느낌이었다. 그 침묵은 남수 혼자 있을 때의 그것과는 다른 색깔을 띠고 암운처럼 집안을 떠다니고 있었다. 그것은 이완된 평온이 아니라 무언가에 잔뜩 위축된 일종의 불안이었다.
그 불안이 남수 혼자서만 느끼는 것이라 해도 이 집의 어느 누군가가 가슴을 훑어 내리는 공허감정도는 느낄 수 있어야 그 불안도 해소될 수 있다는 걸 남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집 식구들은 빈 도토리 속 같은 공터에 잘도 길들여진 채 하루하루를 변화 없이 살아갈 뿐이었다.
양씨가 들어 온지 얼마 뒤에 남수는 집안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에 놀라 일어나 귀를 기울였다. 양씨가 우는 소리였다. 그가 유일하게 노래 부르는 욕실 안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었을 때는 벌써 꽤 오랫동안 울었는지 눈이 잔뜩 부은데다. 얼굴이 온통 눈물로 젖어있었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네.』
『자네가 보기에 내가 살아있긴 한 건가? 난 이미 죽었거나 아니면 죽어가고 있는 중일 걸세.』
『아저씨가 죽다니 무슨 말씀이세요? 아직도 한창인 나이에』
그는 울음마저도 시원하게 울 줄 몰랐다.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누구한테 감추기라도 한 듯 숨을 죽여 흐느끼는 것이었다. 남수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양씨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저 망연히 서있는 것뿐이었다. 그가 느끼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는 절대 죽지않는다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양씨는 말없이 집을 나갔던 것이다.
양씨의 가출에 대해 그의 처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오히려 말을 꺼내려던 남수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양씨가 없어도 그들은 변함없이 자고, 먹고 적당할 때 웃을 수 있었다. 어떤 묵계같이 그 집식구 누구도 양씨의 가출을 화제로 삼지 않았다. 아이들은 여전히 잘 먹고 잘 놀고 초인종소리에 침묵하고…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남수에겐 양씨의 가출이 실감되지 않았다.
양씨는 처와 아이들의 무관심속에서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돌아왔다. 밖에 나갔다 자정이 되어서야 돌아온 남수는 문 앞에서 열쇠를 꺼내다말고, 옥상으로 이어진 제단에 웅크리고 앉아 자고 있는 양씨를 발견했다. 남수가 어깨를 흔들자 그는 금방 깨어났다. 전혀 취하지도 않았으면서 밖에서 자고 있는게 이상해서 이유를 물었다.
『열쇠를 잃어 버렸어. 벌써 며칠 전이지 분명히 혁대에 매달아 두었는데 어디에서 빠졌는지 모르겠단 말이다』
양씨는 다시 혁대를 더듬어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남수는 며칠 전부터 밤이면 이렇게 문 앞에 왔다가 되돌아가곤 하는 그의 모습이 떠올라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양씨가 일주일동안 한없이 작아진 것처럼 느껴졌다.
『벨을 누르시면 되잖아요.』
남수가 딱하다는 듯이 말했다. 결국 일주일동안 그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 없이 되돌아온 걸까.
『집사람이 자고 있을 텐데, 그리고 알다시피 암만 눌러도 절대 열어주지 않기로 돼 있거든』
『모두 핑계를 대는군요. 아저씬 아주머니를, 아주머니나 아이들은 아저씨를. 그러나 보면 아부도 이문을 열 수 없게 되고 말겁니다. 그럼 아저씬 제가 이 열쇠로 문을 열고 저만 들어가 문을 닫아버려도 할 말이 없으시겠군요.』
『그렇긴 하지만 함께 들어가게 해주었으면 좋겠네. 난 몹시 피곤하거든』
남수는 생활에서 오는 피로보다도 인생 그 자체에 대한 피로로 더 찌들어 버린 듯 한 양씨의 얼굴을 보듯 암담한 심정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엇이 그로부터 모든 의욕과 생기를 쥐어짜 갔을까 생각하면서『대포 한 잔 하실래요? 그 다음에 같이 들어가십니다.』
남수는 열쇠를 쩔렁거려 보이며 흥정하듯 말했다. 양씨가 말짱한 정신으로 이불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비참한 기분에 젖어 한 잠도 못 자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술은 집사람이 싫어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조반도 지어야 하고 또 자넨 벌써 취하지 않았나.』
양씨는 천연덕스럽게 그런 말을 했다. 남수는 부아가 치밀었다.
『하지만 제가 문을 열지 않으면 아저씬 들어갈 수가 없는데요. 자 조금만 마시는 겁니다. 아주 조금만』
남수는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한 양씨를 잡아끌어 팔짱을 끼고 계단을 내려갔다.
양씨는 꽤 오랫동안 아무 말 않고 따라주는 술만 받아마셨다. 취한 모습을 한 번도 보이지 않던 그라 걱정이 됐으나 취기가 오르자 욕실에서처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주인여자가 눈 쌀을 찌푸리는 것도 상관 않고 그는 세 번이나 반복하고 나서야 겨우 노래를 그만두었다.
『자넨 무슨 희망으로 사나? 고시에 패스할 거라는?』
그가 갑자기 심각한 얼굴을 하고 남수에게 물었다.
『고시합격이오? 글쎄요, 벌써 네 번이나 낙방을 했습니다. 언젠가는 합격을 하겠지만 사실 저도 많이 지쳤습니다.』
『지쳤다구? 하지만 지쳤다구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장 일세 끝장이란 말이야 나처럼』
『하지만 전 아저씨처럼 벌써 인생이 지친 건 아닙니다. 아저씨처럼 체념하고 포기하기엔 너무도 젊지 않습니까? 아저씨를 보고 있으면 저까지 그렇게 무력해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양씨는 입을 꽉 다듬고 초점을 잃은 눈으로 남수를 쳐다보았다.
『집사람은 날 보고 집이나 보라고 하더군. 그날 집사람이 시킨 심부름을 잘못했거든. 나더러 구멍가게 하나 못 볼 주변머리라나. 난 겨우 아이들 밥이나 해주고 집이나 보는 무기력한 인간이라는 말 일세…그냥 내 자신이 미워지거든. 내가 내 자신을 집에서 쫓아낸 걸세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그런데 바깥세상은 참 무서웠네. 사람들이 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 같고 무슨 말을 해도 믿어주질 않는거였어. 그러니까 자꾸 집 생각만 나더군』
남수는 주머니에서 열쇠꾸러미를 꺼내 흔들면서 말했다.
『문제는 모두 이것 때문입니다. 이게 도대체 뭡니까? 남을 못 믿어서 만든 이 열쇠 때문에 자신까지도 거부당하고 한 치도 안 될 문 밖으로 내 동댕이쳐지게 된 겁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여전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양씨가 겁 먹은 것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들어가시는 대로 아주머니가 문을 여시도록 하시는 겁니다. 열쇠는 문열어줄 사람이 없을 때만 필요한 거죠. 아저씨는 가게를 보시고 아주머니는 살림을 하시고…아이들은 혼자 집을 지키지 않아도 되겠지요. 아저씨가 아무것도 달라진 것 없이 돌아오셨다면 이제부터라도 달라지세요. 자 빨리 들어가십니다.』
남수는 양씨를 부촉하며 일어섰다. 그리고 제발 모든게 제대로되어주길 빌면서 계단을 더듬어 올라갔다.
『자 전 먼저 이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겠습니다. 아저씬 벨을 눌러 아주머니를 불러내셔야 되요 그럼 건투를 빕니다.』
남수는 문을 열었다. 양씨가 얌체처럼 뒤따라 들어오려고 했으므로 그는 재빨리 현관문을 닫았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서서 양씨가 벨을 누르길 기다렸다.
그러나 벨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계단에라도 주저앉았는지 양씨는 아무 기척도 없었다. 기다리다 못해 남수는 문틈에 대고 속삭였다.
『아저씨 어서 벨을 눌러요 어서요』
그래도 양씨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저씨한테 그 정도의 용기도 없다니 한심하군요.』
남수는 화가 나서 문을 뻥 차고 뒤돌아섰다. 그러자 그때 딩동하고 벨이 울렸다. 남수는 벨소리가 더돌려오길 기대하면서 손끝으로 문을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 기대했던 대로 계속 벨이 울리자, 그는 자기의 방안으로 들어가 방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벨소리가 울려도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럴수록 벨소리는 점점 거칠어지고 벨소리는 점점 거칠어지고 벨소리 사이의 간격도 짧아져서 연속적으로 이어져 들렸다. 그리고 끝내 처가 나오지 않자, 양씨는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양씨가 문 두드리는 소리에 맞춰 남수는 주먹으로 방바닥을 두드리며 오동동 타령을 부르기 시작했다. 문 열어, 문! 하는 양씨의 고함이 높아질수록 남수의 노래 소리도 따라서 높아졌다.
어디신가 멀리서 호각소리가 들려왔다 길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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