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실수는 병가상사(兵家常事)란 옛 말이 있다. 잘못에 대해 관대했던 우리네 옛 사람들의 넉넉한 마음이 담겨져 있는 듯하다. 엄격한 선비 정신으로 무장된 당시의 법도 속에서도 통용된 이 고어(古語)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묵시적으로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일곱 번뿐이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하라(마태 8장 22절)는 그리스도의 당부는 한번 실수를 눈감아 주는 차원을 훨씬 넘어 상상 하기 힘든 관대함을 지니고 있다. 인간적인 이해인지는 모르겠으나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하라는 그 말씀 속에도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포함돼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초범이거나 고의성이 없다고 인정되는 범죄는 법정에서도 동정을 받게 돼있다.
소위 정상참작이라는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최근 상계동을 비롯, 양평동 등 서울 일원에서 전개된 강제 철거사건은 그 반복성 때문에 도시 행정의 실수로만 간과해 버릴 수 없어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어제 오늘의 실수가 아닌 그 반복성에서 차라리 고의성마저 읽게 된다.
특히 이번 사태는 목동 재개발사건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발생한「반복된 잘못」이란 점에서 정상 참작의 여지가 도무지 없다. 도대체 어떤 행정이기에 30년이 가깝도록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면서 절대 빈곤선 이하의 도시 빈민들을 벼랑 끝에 서게한단 말인가.
졸지에 새 둥지 같은 보금자리를 헐려 버리고 가재 도구마저 잃어버린 철거민 80여 세대는 급기야 명동으로 이주(?), 사도회관 뒷마당 작은 공터에 천막을 쳤다. 장기전에 들어간 셈이다.
오늘 우리 사회의 도시 빈민문제는 도시 빈민형성 제3기에 해당하는 60년대 초부터 발생, 그들의 삶의 터전이 생성하고 철거당하는 악순환을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무려 30여년 동안 되풀이되고 있는 현상이다.
고도의 경제성장 정책이 낳은 필연적인 산물이 도시 빈민이라면 도시미화, 재개발 정책은 도시 빈민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문제로 발전되기에 이른 것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하고 다시는 같은 문제로 고통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은 상시적인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도시 빈민문제는 소위 해결이라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지역의 빈민촌 형성을 유발시키고 다시 철거와 농성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싸움의 연속일 뿐이다. 정책 부재, 인간 존엄성 부재의 어두운 현실 속에서 헤쳐 나오겠다는 의지가 도무지 없다.
지금 당장 눈앞을 가리고 그래서 보이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임기응변식의 정책, 아니 그보다는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박탈당하는 철거대상 주민들의 생존의 몸부림을 외면하는 비인간적인 정책이 지금 이 시간, 상계동과 양평동 등의 사태로 다시 한번 입증된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나 형태는 사람의 생긴 것 만큼이나 다양하다. 아직 누구나 똑같이 잘 살수는 없는 것이 분명한 현실이라면 부유한 사람들이 부유하게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인정하듯이 가난한 사람들의 빈약한 삶의 모습도 인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인 미국에도 거지가 어슬렁거리는 슬럼가가 있다지 않는가.
아시안 게임도 좋고 올림픽도 좋지만 보다 중요한 대상은 인간 그 자체여야 할 것이다. 외국 손님들의 눈에 잠깐동안 깨끗하고 근사하게 비쳐지기 위해 하루 벌어 하루를 살기도 힘든 수많은 사람들의 생존권이 위협당해야 한다면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제나라 사람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 외국 사람들의 웃음을 보아야 한다면 그처럼 허한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관할 당국에서 제시한 보상 조건에 순응하는 사람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보상조건이라는 것에 도무지 응할 수가 없는 형편의 주민들이다. 목돈이라야 단돈 1만원을 손에 쥐기 어려운 그들의 형편에 전세 1백만원의 셋집을 구해준들 가구당 6만원이 넘은 월세금은 무슨 수로 감당해낼 수가 있겠는가 하는 얘기다.
현실성이 없는 조건에 불응하고 남아있던 80여 세입자 세대는 바로 지난 14일 밤 과거와 다름없는 강제 철거의 절차를 밟은 뒤 삶의 터전을 잃었고 명동성당(교회)을 찾아온 것이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이들이 교회를 찾을 수 밖에 없었던 절박한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고 「힘을 내세운 힘의 행정」의 무모와 미련함을 함께 탓하는 분위기였다. 반면 다른 면에서는 이들의 절박한 현실에 혀를 차며 딱해하면서도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교회가 해결사의 위치에 서야하는 입장에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철거문제는 단순히 집을 잃어버린다는 개념을 넘어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희생시키는 도시미화, 재개발의 문제점은 근본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고 본다.
아울러 교회는 인간의 존엄성이 그 어떤 이유, 명목으로도 파괴되지 않도록 반복적인 잘못을 허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문제발생 후 어쩔수 없는(?) 장소제공의 입장에서 벗어남은 물론 이 사회가 인간 모두를 존중하고 아낄 수 있는 풍토가 되도록 선도적 차원에서 이끌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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