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열리면서 우리교회는 순교자 성월을 맞이한다. 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을 맞기 전까지는 복자성월로 지내오다가 복자들이 전원 시성(諡聖)된 이후에는 순교자성월로 명칭이 바뀌었다. 올해로 4년째 순교자성월을 지내는 셈이다.
2백주년을 계기로 복자성월이 순교자 성월로 그 명칭이 변하면서 성월을 지내는 의미나 열성이 많이 퇴색되고 반감되었다는 비관이 되풀이돼오고 있다.
사실 103위 순교복자들이 1984년 5월 6일 한꺼번에 시성되기 이전까지는 기도하고 물상하며 순례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전국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9월 복자성월이 되면 전국 각 본당과 수도회, 교구단위로 복자현양대회, 성지순례, 시복시성기도 등이 펼쳐져 성월의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특히 시성을 앞두고 복자들의 전구(傳求)로 기적이 일어나면, 이를 신고하도록 함으로써 성지를 찾아 묵상순례 하는 기도행렬이 상당히 많았던게 그 당시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단적으로 표현하면 순교자성월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모르는 신자들이 많고, 9월이 순교자성월임을 알고는 있어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는 신자들이 대부분이라는 지적이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 기도의 대상이었던 복자들이 모두 시성됨으로써, 뚜렷한 기도의 대상이 없어졌다는 점을 우선 꼽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성인을 103위나 한꺼번에 모시게 된 성취감내지는 만족감이 순교자 성월의 존재를 반감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점은 우리 교회가 처음부터 복자성월을 지내는 근본취지를 잘못 교도했거나 제대로 정확이 교도하지 못한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교회는 순교자성월이 갖는 진정한 의미를 새로이 일깨우고 교육해야할 우선적인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현재 순교자를 여러분 모시고 있는 교구나 미개발된 성지들의 개발을 서두르고 있는 몇몇 교구들은 순교자들의 시복 시성과 성지개발을 목표로 기도와 헌양행사 등을 갖고 있으나 여타 교구들은 잠잠한 상태이다. 따라서 한국교회전체의 순교자성월이 소수 교구나 지역에 한정된 채로 흘려보내는 잘못이 있어서는 안 될 줄 안다.
오늘날 순교자성월이 퇴색되고 있는 또 다른 원인은 교회의 외화내빈(外華內貧)에 있음을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다. 곧 교회존립의 근간이 되는 내적, 영성적인 바탕이 약화됨으로써 교회 전반적으로 큰 문제점을 야기 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물자가 부족하고 모자라던 과거에는 교회가 어쩔 수 없이 외적으로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수억원을 들여 성당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밖에 없었다. 수억원을 들여 성당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신자들의 헌금도 크게 기대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때에는 교회가 내적으로 활발히 움직이고 신자들의 신심도 높이평가 할만 했다. 내ㆍ외적으로 가난하게 살면서 교회의 정신대로 살려는 모습들이 뚜렷했다. 아마 이러한 내적이고 영신적인 삶이 밑거름 되었기에 불과 2백년이란 일천한 교회역사를 가지고도 세계 속의 한국가톨릭으로 일약 발돋움할 수 있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이처럼 가난하면서도 내적으로 생동감을 잃지 않았던 한국교회는 2백주년을 보낸 이후부터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각자의 신앙생활이나 태도는 더 이상 중요시하지 않고 성인을 103위나 모신 교회의 일원임을 자부하고 내세우기에 급급한 인상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풍족하고 모자람이 없는 물자의 공급은 청빈을 외면하고 안락함과 편함을 쫓도록 부지불식간에 물들여놓았다. 이런 현상은 교회전역에 만연돼 있어 여간 복잡하고 큰 문젯거리가 이닐 수 없다.
교회를 구성하는 성직자와 일반평신도 수도자들의 삶이 세상과 더불어 속화되고 있다면 신앙 때문에 목숨을 버린 순교자들의 삶이 오늘날 어떻게 투영될 것인가? 그들의 희생ㆍ극기ㆍ봉사 끝내는 순교가 오늘날은 바보스럽고 미련한 행동으로 비춰지지는 않을는지 의심스럽다.
훌륭한 순교성인들을 선조로 모시고 있다는 자부심은 자칫 잘못하면 그들을 오히려 욕보이는 못난 후손들이 될 수 있다.
이제 4년째 맞는 순교자성월에 우리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을 함께 생각해봤으면 한다.
우선 가난하게 살면서 기도하는 교회모습을 되찾아야 하겠다.
순교자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배우고 익혀 실천해야할 것이다.
이일은 교회의 지도계급인 성직자들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
우리 한국교회는 아직도 성직자들의 언행이 신자들의 삶을 좌우할 만큼, 지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음을 잊지말아야한다. 성직자들의 삶이 순교자들의 삶을 대변해줄 때 신자들의 삶은 성직자들을 닮을 것이고 이는 곧 한국교회가 훌륭한 선조들을 둔 모범적 교회임을 입증하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는 순교자들의 뒤를 따르는 후손으로서 비록 피 흘림은 없다 하더라도, 피를 흘리는 각오와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무혈(無血)순교의 자세를 정립해야 하겠다는 점이다.
이 무혈순교는 각자의 처지와 형편에 따라 같지 않겠지만 우리로서는 북한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와 후원을 제의하고자 한다.
우리와 같은 형제ㆍ자매로서 순교와 흡사한 처지에서 40년간을 살아온 그들을 기억하고 돕는 일은 우리 순교선조들도 크게 기뻐할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매년 되풀이되는 순교자 성월이지만, 금년은 우리한국교회가 북한 침묵의 교회를 위해 무혈 순교한 뜻 깊은 성월로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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