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이 몹시도 세차게 부는 어느 늦은 밤, 어느 시골 성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천둥번개와 함께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밤의 적막을 깨면서 약간의 무서움을 가져다준 깊은 밤이었다.
막 잠자리에 드는 순간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바람을 타고 희미하게 들여왔다. 그 이상한 소리는 커졌다가도 이내 사라지곤 했다. 나는 그 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나섰다. 사제관을 나서자 그 이상한 소리가 성당 안에서 들여옴을 알았다.
열쇠구멍으로 성당 안을 들여다보았다. 성체불이 불그스레 타오르는 제단 앞에 어떤 청년이 엎딘체 꾸물거리고 있었다.
소리나지 않는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계속하여 꽥꽥 소리를 지르기도하고 울기도하더니 노래를 불러댔다.
그 노래는 「주여 베드로를 불쌍히 여기소서」였다. 그는 그래도 성이 차지 않는지 또다시 소리를 꽥꽥질러댔다.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이 되어 있고 술을 얼마나 퍼마셨는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는 다시 절규를 시작했다.
「주님 이대로 죽을 수 없습니다. 나는 살고 싶습니다」라고.
겨우 일으켜 의자에 앉혀두고 자초지종을 물어 보았다. 불치의 병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병원에서 퇴원해 오는 길이란다.
그 청년은 바로 평소에 친했던 베드로였다. 그는 성가대원으로 열심히 봉사하는 착한청년이었고 신학생이던 나를 무척 따르던 친구였다.
그 후 나는 자주 그의 죽음의 침상을 방문했다. 그때마다 그는 나더러 성가를 불러 달라고 졸랐다. 물론 그의 신청곡은 그가 제일 좋아하던「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이문근 신부 작곡)였다. 다만 가사 만바꾸어「주여 베드로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그 후 베드로의 생명은 하루가 다르게 꺼져갔고 통증이 올 때마다 그의 애창성가「주여 우리를」을 애타게 노래했다.
베드로의 마지막 날도 마찬가지였다. 말문은 막혔어도 숨을 헐떡이며 나를 응시하는 눈빛 속에 그의 애창성가를 불러달라는 소망이 그윽했다.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던 우리는 한껏 목청을 돋구어「주여 베드로를 불쌍히 여기소서」를 열심히 그리고 간곡히 노래했다.
어느새 우리들은 울먹이며 성가를 불렀고 반대로 베드로는 미소를 머금은 체 숨을 거두었다. 결국 이 한곡의 성가는 죽음의 고통을 이겨내게 했고 죽음의 암흑을 생명과 미소의 빛으로 바꾸어 베드로를 영원한 안식의 나라로 안내했다.
성가는 기도이다. 평화와 구원에 이르는 은총의 기도이다 죽음에서 승리하게 하는 힘과 은혜를 지닌 기도이다. 또한 성가는 비록 말 그대로는 성스러운 가곡이지만 그저 아름답다라는 미적 정서를 훨씬 초월하는, 생명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찾아주는 위대한 가곡이다
오늘의 우리성가는 어떠한가 한마디로 우리들의 삶을 일깨워 주는 성가가 너무 적다.
불러도 부른 것 같지 않고 들어도 들은 것 같지 않은 노래가 너무 많다. 우리의 신앙을 일깨워 주고 길러왔던 성가들은 어디론지 사라지던가 아니면 가사와 곡이 모두 바꾸어 본래의 그 맛을 잃어버렸고 웬 낯설은 곡들은 아무리 애써 불러 보아도 도무지 마음에 와 닿질 않는다.
통일성가집을 낸다더니 결국 남북으로 흑백을 갈라 버린 분단성가집이 돼버렸다.
개창성가만으로도 미사전례를 티 없이 잘 치룰 수 있으니 본당 경비만 축내는 성가대는 해체 내지는 먼발치에서 서성거리게 했고 음악인들은 발붙일 곳이 없다며 개신교로 빠져 나가고 있다.
본래 개창성가는 개신교에서 시작됐고 성가대는 가톨릭의 깊은 전통이요 공의회헌장에서도 성가대의 가치와 존속을 강조하고 있건만 지금은 반대가 되어 성가대 없이는 개신교예배가 이루어 질 수 없고 개창성가 없이는 미사가 안 되는 모양으로 바뀌었다. 몇달전 국립 합창단이 내가 작곡한 미사곡을 연주한다며 초청을 하기에 어째서 미사곡을 연주하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어느 개신교의 부활절 예배 때 이 미사곡을 불렀는데 우리감성에 맞더라며 이곡을 택했다고 설명하기에 예배 때 미사곡을 부르다니 그런 일도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하여간 한참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러 신심단체의 노래도 우습기 그지없다. 특히 꾸르실료와 ME(부부주말강습)의 노래가 더욱 더하다. 얼마나 노래가 궁했으면 유행가에 가사를 부쳐 노래 불러야 했을까. 지극히 존경하올 본당신부님, 제발 성가대를 살려 주시고 이끌어 주시며 그들의 노고를 격려해 주십시오. 본당신부님이 누구시냐에 따라 죽고 사는 성가대가 아니라 교우들에게 하늘의 은총을 날마다 주는 은총의 전령자가 될 때까지 참아주시고 지도해주시며 이끌어 주십이요
그리고 사랑하는 성가대원들이여, 본당경비만 축내는 단체로 오해받지 말고 뜨거운 신심으로 은총을 날라다 주는 은총의 전령자임을 깊이 마음 새기며 본당공동체를 위해 열심히 봉사 하십시오. 멋진 성가 특송을 불러주어 성가대가 있고 없고의 차이를 보여 주십시요.
예리하신 본당신부님의 꽥소리(성가대 노래를 중지하시오)를 듣기 전에 철저히 연습하여 교우들의 영혼을 하느님 곁으로 인도하는 성가를 들려주세요.
끝으로 교우들이여, 성가를 열심히 불러 죽은 베드로의 모습처럼 평화와 미소의 영원한 삶을 이룩하십시오. 그러나 모든 성가를 독차지해서 부를려고는 하지 마시고 성가대의 노래를 귀담아 들어 주세요. 성가에 담긴 주님의 말씀을 입보다는 귀와 마음으로 듣고 새기며 묵상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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