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족이 서울을 떠난지도 벌써 백여일이 지나고 있답니다. 갑작스런 이사로 모두들께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리고 온 이후 아직 낯선감을 떨치지 못한 채 그리움의 가슴앓이에 빠져있답니다. 나의 영혼이 잠에서 깨어나 성장한곳, 사랑의 이웃들이 옹기종기 계신곳, 어둡고 슬프고 죄악 투성이던 삶을 주님께서 어루만지시고 안으시고 씻어주시었던 새 생활의 장(場)이 바로 그곳이었지요. 주님께서 맺어주신 여러 벗들과의 만남은 참으로 천상의 삶이었지요. 대개 연상이시지만 주님 안에서 나눈 우정이라 전 무엄하게도 형님들께「벗님」이라 부름을 용서하소서. 마음이 가난한 분들과의 만남과 함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게 해 주셨고 성전건립을 계기로 예수님의 모습을 지니신 신부님을 모실 수 있었고 온갖 노력과 사랑과 땀으로 응결된 우리의 성전을 바라보며 모두들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한 듯 주님사랑 안에서 일치를 이루는 감격을 맛볼 수 있었지요.
「이별은 가장 아름다운 슬픔」이라 노래한 것을 읽은 적이 있지요. 주님께서는 이 아름다운 아픔을 딛고 더 나은 것을 누릴 수 있게 허락하셨지요. 성체성혈대축일 미사 중 거양성체 때 감격으로 말씀도 제대로 잇지 못하시던 수사신부님. 미사 때마다 더욱 제대 가까이 앉으려는 신자분들. 본명축일 성가대의 축가에 수사복 밑으로 두 손을 모으시고 눈감고 간절히 기도하시며 서계시던 본당신부님, 오! 이곳은 천상의 잔칫집이라 겸손과 사랑과 자비로움으로 가득찬 이곳 우리성당 기뻐하시는 주님을 뵙는 듯 하지요.
천방지축 까불며 다니는 요한이를 쫓아다니며 불같은 땡볕 속에서 「소중한 것을 위해서는 희생이란 거름이 필요함」을 깨닫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답니다.
이제 넘겨진 책장들에 미련을 버리고, 떠나온 벗님들껜 주님께서 항상 사랑과 축복을 주실 것을 믿고, 그리움의 아픔에서 벗어나 기도 속에서 만남만으로도 기뻐하며 주님께서 주신 새 삶을 이제나마 받아들일 수 있음에 감사드리며 부족한 저를 사랑해주신 봉천동 벗님들께 또한 주님께 한 번 더 감사드립니다.
강소강<대구시 수성구 범어1동6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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