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종신부 생활을 마치고 그 유명한 광부들의 소요가 있었던 사북읍과 8km 떨어진 고한읍 두개를 합하여 사북고한본당이라 칭하는 명칭조차 흥미있고 일거리 적지않게 느껴지는 새까만 땅에 몸을 풀었다.
인구 7만으로 전국 제1의 석탄을 생산하는 광산도시라지만 하늘도 산도, 집도 물도 사람도 검은 것을 제외하고는 그흔한 극장하나 없는 문화의 불모지이다. 또한 하루몇번의 기차가 아니면 다닐수조차 없는 대한민국 육지의 섬이기도 하다.
이곳에 부임한 후 가정방문을 하던 중 나는 광산촌 부임 충격 제1호를 맞게 되었다. 공동우물가에 모여있는 아줌마들 속에서 냉담한 신자를 발견하고 신앙을 권하니 빈정대는 소리인듯 『난 돈 벌어오는 돼지 가꾸기 바빠 나갈새 없어요』한다. 노련한 여우 앞의 순진한 토끼 새끼처럼 노련한(?) 아줌마 앞에 순진한 시골총각인양 눈이 둥그레 가지고 『그말이 무슨 뜻이예요?』하고 묻자 아줌마들이 깔깔대고 웃어댔다. 울고왔다 울고간다는 광산촌의 풋풋한 인심과 가난한 이들의 순박함이 나에게 많은 힘을 주었지만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사이에서 일어났던 야곱 우물가의 대화가 제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듯이 나에게 있어 이 광산촌 공동우물가의 대화는 적지않은 충격을 주었다.
지하수천미터 굴속에서 가족을 위해 두더지 인생을 살고있는 자기 남편을 일컫어 돈 벌어오는 돼지(힘든 노동을 하기에 많이 먹고 또 돈을 벌어오기에)라 부르는 그 아줌마의 농담(?)이 농담이기를 바라면서도 속으로 자주 『못된X 같으니라구』하는 생각에 화가 치밀었다.
일년 3백65일중 그 어느 하루도 사고 없는 날이 없는 탄광촌, 모 일간지에 난것처럼 3일에 1건씩 아내를, 엄마를 찾아달라는 민원이 쌓인다는 탄광촌, 자동차가 지나가고 바람이 불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석탄가루가 예쁘게 화장한 아줌마들의 코밑마저 까맣게 만드는 전설같은 탄광촌일지언정 2천년전 야곱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나 영원한 생명을 청하던 사마리아 여인이 없으란 법은 없지않겠는가. 부임후 군복을 입고 야밤에 폼(?)을 잡으며 이른바 춤, 술, 노름을 일소하겠다고 유흥업소를 돌아다니며 가정버린 아줌마들을 색출하려했던 일들은 사마리아 여인이 그리운 젊은 사제의 당돌함이었다고 회상된다.
교육, 문화환경 제로지대인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유치원, 독서실, 노동상담소를 하고 부녀자교육, 노인의집, 부모가 가출한 아이들의 보호활동을 하고 광부의 예식장으로도 사용될 성전을 짓고있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다는것은 『하느님, 오늘도 지하수천미터 굴속에서 자신의 폐를 팔아 생존을 위한 전쟁을 하는 저 광부들을 지켜주시며 보호하시고 엄마들이 한사람도 탈선하지않게 해주시고 사랑하는 어린자녀들을 위한 교육, 문화의 정책적 배려가있게 하여주소서』하는 어쩌면 현실적으로는 무책임한 간절한 기도뿐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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