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수로는 할아버지뻘이 되나 나보다 다섯살 밖에 위가 아닌 친척이 한분 계시다. 시체 풍습대로라면 서로 왕래할 것도 없이 남남으로 지내도 그만일 만큼 촌수가 먼 이 할아버지는 당신께서 손수 두루퍼진 친척들을 자주 찾아다니심으로써 우리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그 분을 아주 가까운 친척어른으로 착각하도록 만들고 계셨다. 근래에 그 분의 발길이 뜸해져 문안을 드리러 찾아뵈야지 벼르고만 있던차에 좋지 않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위암으로 수술을 받으셨는데 많이 퍼진 상태여서 당장의 고통만 덜어주는 한도내에서 암을 제거하고 말았으니 오래 못 사실거라고 했다.
마치 친정 아버지가 얼마 못 사실거라는 소식을 들은 것처럼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분이 우리들 친척 사이에 끼치신 영향력이 새삼스럽게 큰 부피가 되어 다가왔고 그만큼 상실감도 컸다. 그 분이 끼치신 영향력이란 친척을 친척답게 하신 일이었다. 우린 그 분이 있음으로써 친척간의 경조사 뿐 아니라 누가 마음고생을 하고 있고, 누구는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걸 알 수가 있었던 것이다.
몇 번 문병을 가 뵌 그 분은 얼마 못사신다는 걸 믿을 수 없을 만큼 회복이 빠르셨고 퇴원 후는 거의 건강하실 때와 다름없는 일상 생활을 하신다고 했다. 그 분은 퇴직 후 서울과 인접한 고양군에다 텃밭에 달린 농가를 한 채 사서 부부끼리만 단촐하게 살고 계셨다.
어느 날 그 분의 따님으로부터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가 왔다. 그 분의 자녀들은 다들 독립해서 잘 살고 있었는데 얼마 안남은 아버지의 여생을 서로 다투어 편히 모시려고 어떤 아들은 모셔가려고 하고, 어떤 딸은 해외여행을 시켜드려야 하고 또 아들은 매일같이 훌륭한 외식을 시켜드리려고 하지만 그 분은 지금까지 자식들이 해오던 보통 정도의 효도이상은 완강하게 거절을 하시니 어떻하면 좋으냐는 거였다. 그 분의 따님은 나보다 이십년은 손아래지만 나에게는 아주머니뻘이 된다.
『조카님, 아버지는 여태까지 하던대로만 하지 그 이상은 신경 쓸거 없다고 하시지만 길어야 이년밖에 못사신다는 어른한테 자식 된 도리로 어떻게 신경이 안써질 수가 있겠어요. 지금처럼 그 초라한 농가에서 궁상을 떨다 돌아가셔보세요. 남들이 우릴 뭐라고 할 것이며 또 우리들 가슴엔 얼마나 한이 사무치겠어요. 그러니 조카님이 좀 어떻게 아버지를 설득해주세요. 아버님은 조카님을 좋아하셨으니까요.』그 분이 그렇게 고집이 세다는건 나도 처음 듣는 일이었다. 그러잖아도 댁으로 한번 찾아뵈야지 벼르기만하고 교통편이 불편한 걸 핑계로 차일 피일하고 있었는데 따님이 차편까지 제공해주겠다니 옳다구나 그 어려운 부탁을 승락하고 말았다.
그 분의 시골집은 작은 오막살이였지만 정결했고 텃밭에선 온갖 채소들이 뾰죽 뾰죽 움트고있었다. 마을은 경치가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평범한 시골이었고 주위의 산도 이름없는 야산들이었다. 아무것도 신기할거라곤 없는 가운데 문득 그 분의 아름다움이 눈부셨다. 저분이 저렇게 아름다운 분이셨구나! 그걸 여지껏 왜 못 알아봤으며, 왜 지금에야 알아본 것일까? 속으로 그걸 이상해하면서 나는 연방 눈을 깜박였다. 그 분은 수술 전보다 약간 야위신듯했지만 그게 오히려 보기 좋을만큼 전체적으로 건강해보였고 눈빛은 온화하고 부드럽고 소녀처럼 천진했다. 할머니께 들은 그 분의 근황은 입원하시기 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아침엔 오래 오래 인근의 산과 들을 산책하시고 소박한 식사를 즐기시고 텃밭을 돌보시는 거라고 했다.
나는 그 분이 아름다우시다는걸 확인하자 왠지 내가 받은 부탁에 대해 말한다는게 쑥스러워졌다. 그 분이 현재의 상태대로 행복하시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보기에 그 고장이 너무도 보잘것 없어 보였기 때문에 해외관광을 한번 하시는게 어떻겠느냐 말씀은 드렸다.
『글쎄다. 아직은 그럴 생각이 없는게 나는 매일매일 내 고장 산천, 그 산천에서 나는 수많은 들풀과 나무와 푸성귀와 꽃들과 곤충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감동하는 것만으로도 은혜롭고 행복하단다. 하느님께서 지으신 것 중 아름답지 않은게 어디 있다고 구태어 먼데까지 가겠느냐?』
『그래도 할아버지, 늘상 똑같은 것보다 새롭고 신기한걸 보시면 더 좋잖아요』『하느님이 지으신 것 중 늘상 똑같은 건 아무것도 없단다. 하다못해 민들레꽃이나 질경이 잎도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거든. 눈여겨 보면 놀랍고 신기한 구경거리 아닌게 없는게 하느님께서 지으신거라는걸 이제야 깨달았으니 죽는 날까지 감사하며 누리고 싶구나』
나는 좀 더 안락한 생활환경과 호의호식에 대해선 숫제 권고해보지도 않고 말았다. 검소한 생활과 소박한 식사가 하느님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다우리라는 걸 그 분은 알고 있었고 몸소 실천하고 있는데 딴 무슨 말이 필요하랴.
최근에 있었던 엄청난 욕심과 미움이 부른 죽음에 대해 사회적 여론이 비등하는걸 보고 들으며 인간에 대해 깊이 절망하다가도 그 분을 생각하면 희망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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