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이란 날마다 차가운 방에 불을 지피는 군불이 될 수 있으며 병생의 얼굴에 생기를 돋우는 생금 같은 기운이 될 것이다.
가을은 찬탄의 계절이요 감격의 계절이다.
높고 푸른 하늘을 보고「아」하고 감탄사를 쏟아놓거나 서늘하면서 쾌적한 바람, 속살이 환히 얼비칠 것 같은 가을햇살을 받을 때도 역시 억제할 수 없는 것이「아」하는 감탄사인 것이다.
그렇게 아낌없이 찬탄을 보내고 계절의 변화를 무리 없이 받아들일 때 우리는 몇 사람의 피를 수혈 받는 건강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을의 진정한 감격은 거기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가을에 아낌없이 찬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얻는 것과 잃는 것에 대한 획득과 상실의 연관관계를 인간적인 차원에서 무리 없이 사색케 한다는 점에서 화려한 감격을 체험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조금만 눈을 떠도 그러한 가을풍경은 어디에서고 열렬하게 부딪칠 수 있는 일이지만 그중 아주 작은 예로써 우리 집의 봉선화 꽃을 들 수 있다.
유년의 추억을 되살리는 봉선화 꽃은 여름 내내 붉은 꽃을 수없이 달고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고 잎과 꽃으로 아이들의 손톱을 설레이도록 물들여 주더니 이제는 거치른 매듭의 쇠잔한 모습으로 기진한 채 온몸에 무겁도록 씨주머니만을 달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씨주머니에 손을 갖다 대기만 해도 살갗이 터지고 깨알 같은 까만 씨가 터져 나온다.
한편의 소설 한편의 시가 갖는 우수한 상징이 한 알의 작은 씨앗을 충분히 대신하고 있다.
나는 봉선화 씨앗을 받으며 생명의 심연에 대해 놀라운 감동을 받는다.
인류의 역사는 정신의 역사이기도 했건 만은 아직도 그 깊은 심연의 진실을 캐어내는 정신작업은 너무나 그 본령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심연의 깊이를 재는 것은 인간각자의 정신이겠지만 그 정신이 주도하고 희망하는 쪽이 어느 곳이 더 강했는지에 따라 오늘 우리가 사는 현실의 현주소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신의 첫 발걸음은 허위와 진실을 구별하는 그것이므로 보다 발적적인 삶을 선택하는 순간 어느 쪽으로 든 기울어지는 그곳이 바로우리들 정신의 배경임이 확실하다.
한사람이 허위를 선택할 때 그것은 결코 개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이며 각자가 만인과 관련되어 있는 인류적인 차원에서 인간의 구원은 정신이 이끈다는 논리를 부정할 수 없다.
그러한 인간가족의 정신대회를 나는 지금 국제 펜대회에서 느낄 수 있었다.
말도 많았던 펜대회였다. 화려한 샹들리에 불빛을 받으며 서로 얼굴만 스쳐지나가는 지극히 외형적인 겉치레모임에 내 것 주고 자존심 상하는 불필요한 칙사 대접까지 지적당한 모임이긴 했었지만 뜻밖에 동구권의 수준 높은 작가들이 참석, 커다란 벽을 하나 허물었다는 점에서 이번 대회는 그 의의가 큰 것이었다.
펜은 정신의 방향을 가르키는 풍향계이므로 표현의 획일성은 저열한 것이지만 인간과 미래의 구원에 대한 목적은 나라의 특색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속문인 석방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게 논의 되었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 마당에 펜대회는 무가치하다고 주장하는 쪽도 있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그것이 진정으로 인권의 존중에 대한 정신투쟁의 명상과 성찰로써 대처해야 할 것이지 한 무리의 광고, 자기 보호대책으로 사용되어서는 「펜」이라는 정신대명사의 본질을 벗어나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어떤 일이든 투자한 만큼 성과를 당장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당장은 한국문학을 소개한 세계도약의 길을 텃다는 첫 관문에서부터 좀 지나치게 대접을 잘했다든가 한국 문인 안에서 서로 생각이 다른 양상을 보이는 껄꺼로운 일도 없잖았지만 앞으로 오랜 시간을 두고 보면 한국 펜대회의 성과는 결코 억울한 것은 아닐 것으로 보고 싶다.
공통문제 공통의식의 현실화가 문학에서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조화를 이뤄가야 할 것이다. 지금은 공존시대. 우리 안에 영원히 끈질기게 살아있는 순간은 우리의 존재가 흥분과 경련도 없는 상태가 아니다. 끊임없이 주장하고 동의하면서 여러 가지 경향들의 완전한 균형을 이루며 격렬 아닌 조화의 행복 열광 아닌 충만의 행복을 정신의 힘으로 구가하는데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고해주신 장혁표 교수ㆍ김규동씨ㆍ이종철 신부ㆍ임보영 수녀께 감사드립니다. 이번호부터는 신달자(시인) 이규정 교수(부산여대국문과ㆍ소설가) 윤여덕 교수(서강대ㆍ사회학과) 최홍길 신부(대구 성토마스본당주임ㆍ가톨릭문화관장)께서 수고해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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