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향 각지에서 이른바 4.13조치의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이 땅에 진정한 하느님의 정의가 실현되기를 간구하는 신부님들의 단식기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한사람의 신자로서 느끼는 것은 이 시대, 이 땅의 현실상황이 얼마나 척박했으면 하느님의 백성을 사목해야할 성직자들이 저렇듯 목숨까지 걸고 현실의 불의를 고발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하는 안타까움이며 한편으로는 불의와 거짓이 판을 치는 이 나라의 현실 정치와 사회풍토 속에서 입장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라는 상념이다.
일전에 한 일간지에서 김추기경 현실 발언을 비난하는 사설이 게재된바 있었다. 그 사설은 소위 정교분리라는 원칙하에서 종교는 정치 상황에 대한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었다. 그러면 우리는 정교분리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해야할 것인가? 이 땅에 만연한 불의와 부패가 척결해야 한다고 교회가 촉구하고 나설 때마다 위정자들이 傳家의 寶刀처럼 휘둘러온 말이 소위 정교분리라는 말이었다.
정치란 무엇이며, 어떤 일을 해야하는 것인가? 굳이 어려운 말을 동원할 것도 없이, 그것은「해 뜨면 들에 나가 밭을 갈고, 우물 파서 물 마시며 밥그릇 두드리며 노래하니 임금이 나에게 무슨 아랑곳이랴」는「격양가」의 정신이면 족할 터이다. 이름없는 민초들이 이 땅에 깃들이며 제 생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풀어주고 조화로운 삶을 영위케 하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요 기능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시 생각하면 교회가 수행해야 할 역할은 더욱 막중해진다. 제2차 바티깐공의회의 기본정신인 하느님백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 이들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복음 선포를 이뤄야 한다는 교회의 임무는「백성」들의,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외면하고서는 결코 실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을 망각하고, 회피하는 의미에서의「정교분리」는 결코 진정한 종교와 현실정치의 관계가 될 수 없으며 종교의 하늘과 정치의 하늘이 다른 하늘일 수도 없다. 사회를 완성해 나가는 노력 속에서 하느님의 구원사업도 함께 완성돼 나갈 것이라는 소박한 믿음을 다시 다지면서 척박한 황무지에 한 송이 꽃을 피우고자 단식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간구하는 신부님들의 고통에 마음으로 동참하며 교회 지도자들, 그리고 모든 신자들이 항상 깨어있는 마음으로 이 땅의 참된 복음화에 진력해줄 것을 한사람의 신자로서 부탁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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