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고문을 당해본 신부가 어찌 나하나 뿐이겠는가! 「탁」「억」의 대명사를 남긴 물 고문처럼 살인고문이 아니라 『신부님 안드시면 말 안할래요』하는 어린애 같은 애교의 고문쯤을 안당해본 신부가 어디 있을까! 갑ㆍ을ㆍ병반 3교대를 하는 탄광촌인지라 새벽녘에 찾아와 한잔 하자고 졸라대는 것은 아무리 술을 좋아하는 이라도 술 고문이라는 생각을 안가질수 없다.
새벽2시경 강아지는 요란히 짖어대고 초인종은 쉴새없이 띵똥 띵똥 『신부님, 신부님』하는 고함소리가 곤한 잠을 깨우던 부임 며칠후 어느날. 웬일일까? 총부가 났을까? 몸을 비틀고 일어나 나가보니 비맞은 작업복을 입고 아주 기분이 좋아보이는 젊은이가 손에는 보기만 해도 기가 질리는 커다란 소주병을 들고 『신부님 죄송합니다 신부님하고 이야기좀하고싶어왔읍니다』하면서 연신 허리를 굽실거렸다.
뭐 이런사람이 다 있나싶어 『여보세요 지금이 도대체 몇시인데 오세요. 그것도 술이 취해서요. 신부는 잠도 안자고 사는줄 아십니까!』하고 짜증스런 표정을 지으니 『신부님 저는 지금 퇴근하고 빨리 오느라고 왔읍니다』한다.
그순간『아! 이사람은 오후2시쯤 출근하여 새벽1시경에 퇴근하는 을반 근무자이구나』하고 생각했다.
산소가 부족한 지하 수천미터 갱속에서 힘든 노동을 나오면 피곤도 풀겸 오늘도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에서 습관적으로 한잔씩하고 귀가하는 광부들.『내일 지구의 멸망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한잔의 술을 마시겠노라』며 호탕하고 걸직한 막걸리 웃음을 가진 낭만을 아는 사나이들. 그 사나이중에 하나가 퇴근후 지금 내앞에 와있구나. 그를 내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우는 이와 함께 울고 웃는 이와 함께 웃을 수 있는 얄팍하나마 사제의 양심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날이 새도록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통기억이 나질않는다. 그가 나를 흔들어 깨우기에 눈을 떠보니 날이 밝아있었을뿐. 또 그와 내가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둘다 잠이들어 버렸다는 것뿐.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내가 무슨 말을 해주었는지 모르지만 그가 떠나면서『신부님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를 중얼거리던 기억밖에 없다.
새벽부터 술에 취해 한나절을 자고 일어나 생각해도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 결정을 못내리면서도 다만 이것이 탄광촌 신부가 된 죄(?) 로 받아야할 술고문이라면 오늘도 돌려 보내지않겠노라는 오기와 자존심이 그숱한 밤에 나를 지탱해 주고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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