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지금 과시풍조의 큰 병을 앓고 있다. 과시풍조는 반드시 허영과 위선을 동반하는데 허영은 낭비와, 위선은 몰염치와 짝이 된다.
과시(誇示)란 무엇인가. 실제보다 크게 나타내어 뽐내어 보이는 것이다. 실제보다 크게 나타내겠다는 그 발상에 벌써 허영과 위선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분수를 모르는 낭비는 호사가 그 주범이고, 체통을 망각한 몰염치는 과욕이 그 원인인데, 결국은 이 모두가 인간의 어리석음에서 기인된다.
분수를 망각한 과시풍조, 이것을 못 고치면 우리는 진정한 선진국민이 될 수 없다.
왜 그런가.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지극한 사치를 해야 한다. 사치를 하자면 낭비를 안 할 수가 없고, 낭비를 일삼는 사람들의 정신은 선진국창조에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국민 개개인은 거의 모두가 알게 모르게 이러한 과시풍조에 물들어 있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모든 학생들이 정약과 검소한 말을 잊은지 오래다. 학용품이나 옷이나 신발들에 이르기 까지 아끼거나 잘 간수하는 것은 촌뜨기나 하는 짓이고, 항상 최고품에다 최신 유행이어야 만족하면서도, 이를 아무렇게나 하는 풍조가 언제부터인지 만연되어 있다. 물론 대도시로 나갈수록 그 정도는 심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TV에는 화려한 치장 호사스런 옷차림의 사람들만 나오기 때문이다.
잡지를 펼쳐도 마찬가지다. 온갖 화려하고 사치스런 최신유행의 상품 선전이 판을 치고 있다. 게다가 요즘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욕구를 다 만족시켜 주는 것이 훌륭한 부모인줄 착각하고 있기도 하다.
어른들의 세계는 한 술 더 뜬다. 화려하고 값진 것 위에다 더 크게 보이고 더 많이 보이지 않으면 힘을 못 쓰기 때문이다. 아파트도 동수 많은 단지에 평수가 넓지 못하면 별 볼일이 없다. 승용차는 최신형에다 커야만 체면이 선다.
대학마저도 학생 수가 많고, 건물이 크고 볼일이다. 요컨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철저히 내용보다 외형위주로만 되고 있다. 외형만 많고 높고 크면 내용이야 좀 빈약해도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는 셈인가. 그래서인지 살기는 별반 나아지지도 않는데, 해마다 발표되는 GNP는 쑥쑥 높아져도 불평 한마디 않게 된 것일까?
검소나 절약이란 말은 외형보다 내용을 중시한 것인데, 이제 이 말은 사전에서도 사라져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렇기에 이제 우리도 많은 생활용품을 1회용으로 쓰고 버리는게 아닐까? 1회용 컵은 물론 1회용 식기와 숟가락, 1회용 치약과 칫솔, 1회용 비누와 면도기……수도 없이 많은 1회용 물건이 사실은 모두 3~4회용, 아껴 쓰면 10회용까지도 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우리 세대는 검소와 절약을 미덕으로 배우며 자랐다. 그래서 단단한 땅에 물이 고인다는 속담도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말들이 모두 고어사전에나 수록되어야 할 말들이란 말인가?
미국사람들이 손수건은 물론 내의류까지도 한번만 쓰고 버리는 오랜 습관을, 불경기를 맞은 최근에야 고쳐보겠다고 애쓰고 있으나 너무 늦어 어렵다는 말은, 우리에게도 시사 하는 바가 크다.
허영심에 의한 과시풍조가 호사를 부르고, 호사가 낭비를 일삼는 병폐가 모두 인간의 교민과 어리석음에서 오는 것이다. 과시풍조에 의한 위선이 몰염치를 불러오고 몰염치가 과욕에서 생기는 것 역시 인간의 교만과 어리석음에서 온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가식 없이 남에게 드러낼 뿐 괜한 허세를 떨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은 남을 속이면 자기도 속는다는 것을 안다. 현명한 사람은 좋은 자리를 잃을까봐 염려하기보다 염치를 잃을까봐 염려한다.
현명한 사람은 과욕이 결국은 자기를 파멸시킨다는 것을 안다. 이런 것들을 모르는 것이 어리석음이다. 우리는 최근에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을 많이 보고 있다.
그러나 신앙인, 특히 봉사와 희생, 사랑의 실천으로 만인의 사표가 되신 그리스도를 닮고 그분을 증거 하겠다는 크리스찬이라면 결코 그런 어리석음에 바지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국민이 겸손보다 허세, 검소보다 호사에 들떴을 때는 반드시 환락에 의한 퇴폐풍조가 만연했고, 드디어는 이로 인해 나라가 비운에 빠지고만 예를 우리는 얼마든지 알고 있다.
옛날에 비해 잘살게 된 것은 사실이나 그만큼 잃은 것이 많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또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끼니를 걱정하는 어려운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위정자, 사회의 지도계층부터 철저한 검소와 청빈을 실천할 때 이 땅은 하느님의 참 은총을 바랄 수 있을 것이다.
유사 이래 최초의 경사요 온 세계인의 축제인 이번 올림픽을 보다 알차고 빛나게 치러야겠다는 것은 국민 된 도리이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허세, 과시욕으로 만에 하나라도 나라의 체통을 잃고 반만년 문화민족의 긍지에 손상을 입혀서는 안 될 것이다. 길거리 영세 상인들의 생계를 막아놓고 평화구역까지 설정해 놓은 상황에서 괜히 외국손님들이라고 과잉접대에 정신을 못 차린다면 이는 국민의 빈축과 원망을 면치 못 할 것이다. 과거에 우리는 크고 작은 국제행사 때마다 과잉친절, 과잉환대로써 우리의 깜냥을 잃어버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내국인의 행동자유를 통제하는 조치인 평화구역 안에서 외국인 자녀가 우리 임산부에게 폭행을 가한 것을 그냥 두고 보는 것은 무엇인가.
필요 없는 허세는 지양하고 필요한 조치는, 더군다나 우리의 주체의식과 관계되는 조치는 반드시 강구해야 하는 것이 정부당국자가 국민 앞에 보일 자세가 아닌가.
부디 체통을 지키자. 그리고 낭비를 삼가고 허영을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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