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성인 예비자 교리반의 교사로 임명을 받았다. 그 당시(30년 전)만 해도 성인 교리반은 신부나 수녀가 전담하게 마련이었는데 아무런 능력도 없었던 필자가 교사직을 맡게 되어 처음엔 무척 당황하였다.
그러나 본당 신부의 간곡한 말씀에 순명하는 정신으로 그 일을 맡아 그 후 10여년간 계속하게 되었다.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필자는 성서, 교리서, 교회사, 기초 신학 등의 책을 읽고 공부하였으며, 또 가르치는 동안에 자신도 미처 몰랐던 교리의 진미를 깨닫는 일이 많았다. 아직도 미약한 사람이지만, 다소라는 신앙의 뿌리와 기초가 박혀 있다면 순전히 이 교리반을 맡아 하는 동안에 하느님께서 주신 은혜라고 믿고 있다.
최근 듣자하니 어떤 본당들에서는 사제가 교리 교사를 많이 양성하여 여러 개의 교리반을 운영하고 사제는 가끔 각반을 돌면서 돌보아주는 구실만 한다고 한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본다. 밀물처럼 밀려드는 예비자들을 감당하기에는 사제나 수녀의 손만 가지고는 너무나 모자란다. 물론 평신도는 일반으로 신학과 교리의 전문지식이 미약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제의 지도를 받으면서 계속 공부하여 가르치려는 열성만 있다면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데 큰 지장이 없다고 본다.
더구나 교사자신이 가르치는 동안에 교리면에서나 신앙면에서 비약적인 성장발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중시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교회당국은 평신도에 의한 교리반 운영을 좀 더 과감하게 실시하도록 바라마지 않는다. 평신도 중에는 그 재목들이 얼마든지 있다고 믿는다.
교회의 운영면에서도 평신도의 실질적 참여 기회가 넓어져야 한다고 본다. 여러 계층에 속하는 평신도의 재능을 활용한다는 점 말고도, 평신도 자신의 신앙적 활성화내지는 교회 발전에 대한 열의를 드높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필자는 10여년 전에 한 성당건물을 짓는데 앞장선 일이 있었다.
당시 본당 책임자였던 사제는 거의 모든 문제를 사목위원들과 신자들에게 일임하고 자신은 후견인 비슷한 구실만하였다. 그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일년 안에 필요한 기금을 모금하여 성당 건립을 끝마쳤다. 이런 외견상 성과 이외에도 매우 주목되는 현상을 목격하였다. 그때처럼 많은 신자들이 활성화되고 보람에 찬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교회 건립을 위한 자발적 참여를 통하여 신자들은 신심 면에서나 교회 문제에 대한 관심과 애착심 면에서 일찌기 볼 수 없을만큼 강화되었다. 물론 사제가 앞장서서 이런 일을 한 경우도 비슷한 성과가 있겠지만 평신도 중심으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경우에도 오히려 그만 못지않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드러난 점에서 큰 뜻이 있었다고 본다.
무릇 한 공동체의 운영 책임자는 공동선을 위한 최선의「지렛대 구실」을 하는 슬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공동체는 각 개인의 공동적 선인과 발전을 위해서 존재한다. 교회도 신자들의 공동체인 만큼 운영에서도 구성원인 신자들이 다같이 성장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자면, 교회의 공동목표인 구원사업과 관련되는 모든 일에 가능한한 많은 신자들이 자기 일처럼 참여하여 일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본다. 옛날에는 신자들의 수준이나 질이 낮았기 때문에 사제가 모든 구실을 다하다시피했다. 그래서 오늘날도 그런 타성이 가시지 않고 있는 일이 더러있다. 사제 편에서 보면 그만한 이유가 다 있을 줄 안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사제는 신자들의 참여와 활동을 더욱 활성화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 더욱 힘써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를테면, 교회의 운영과 관련된 일에서 사제가 간단히 결정하고 공표하기보다는「이 문제에 대하여 너의 의견과 참여 그리고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하는 식으로 다수의 신자들을 움직이는 지렛대의 구실같은 것이다. 마치 예수께서 직접 모든 일을 하시지 않고 제자들을 뽑아 양성하여, 「너희는 모든이에게 복음을 전파하라」하시면서 파견하신 것처럼 말이다.
비단 교회의 운영 문제뿐 아니라 우리의 사회 공동체에서도 그 책임자는 이와 같은 운영의 슬기를 보여야 한다고 본다. 가까운 예로, 가정에서도 부모가 가사 문제의 결정에서 어린아이까지라도 의견을 내고참여를 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네까짓 게 무얼 안다고 그래」하는 식의 교육방법은 사실상 독재주의의 씨앗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오늘날 이 사회의 독재주의적 풍조는 이런 가정 분위기에서부터 싹튼다고 필자는 믿는다. 이는 은연중에 부모에 대한 반항심으로 발전하기도하거니와, 「흉보면서 배운다」는 속담처럼 아이들은 부모의 그런 태도를 못마땅해 하면서도, 자라서는 부모의 그런 사고방식을 그래도 답습하는 일이 많다. 독재자는 대개 독재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길러진다고 하지 않는가. 독재주의 국가가 쉽사리 민주화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토착화되지 못하고 그를 향한 갖가지 몸부림과 목마름도 우리의 이런 전통적 자세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우리는 가정이나 교회 그 밖의 직장 생활 등에서 자신도 모르게 어떤 독선적인 사고방식과 태도를 드러내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 볼 일이다. 이와 아울러「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은 권위는 하나도 없다」(로마 13,1)라고 하신 성바오로의 말씀을 따라, 우리는 우리의 모든 권한을 겸허한 믿음의 자세로 행사하도록 힘써야한다고 스스로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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