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산 성분도병원이 노사분규의 열병을 견디다 못해 직장을 폐쇄하고 급기야 병원시설과 운영권을 부산교구에 넘겨 병원을 재개하게 된 사건은 여러 면에서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이 사건은 무엇보다 먼저 사용자측이 일반인이 아닌 가톨릭교회의「수도자들」이라는 점과 직장이 인간의 생명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병원」이라는 점이 사회통상적인 노사분규와 다른 점이라 하겠다.
물론 사회병원들 중에서도 노사분규가 발생한 곳들이 없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문제는 그 병원을 운영하는 주체 즉 사용자가 속세를 떠나 수도생활을 하는 수도자들이 경영하는 병원으로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불상사를 겪었다는 점이다.
파업과 직장폐쇄라는 노사쌍방의「마지막 카드」를 던지기까지 파국을 막기 위해 석 달간이나 서로 이마를 맞대고 대화와 협상을 벌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결국 실패하고만 이면에는「신뢰감의 상실」이란 중대한 이유가 깔려있었다는 얘기다.
노조측과 사용자측이 서로 믿지 못한다는 것, 서로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불신의 장벽이 쌓였다는 것은 어느 한편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쌍 방 간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양편에 모두 잘못이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옛말에도 싸움질은 양쪽에 모두 잘못이 있다고 했다. 싸움을 걸어오는 쪽에 대해 대항하지 않고 관대하게 포용하고 설득과 이해를 구하면 싸움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예는 개인對개인의 관계에서도 무척 어려운 일일뿐 아니라 기업對 노조라는 집단관계에서는 더더욱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노사분규가 발생하지 않은 기업체나 기관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수개월에 걸쳐 노사분규와 파업ㆍ직장폐쇄 등이 마치 봇물 터지듯이 전국적으로 거세게 일어났지만 그 와중에 휩싸이지 않은 기업체들도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이것은 평소 사용자와 근로자들이 서로를 신뢰하고 살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었던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사회 조류상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 없을 수 없겠지만, 부산 분도병원의 파업과 직장폐쇄는 잘못의 경중을 따지기에 앞서 사전예방을 서로가 하지 못한 안타까움을 남기고 있다.
소규모 의원이라면 별문제겠지만 종업원 4백여명에 가족까지 합하면 2천여명이 생계가 걸린 직장을 하루아침에 폐문한다는 것은 도의적으로도 쉽게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수녀회측에서 병원을 교구에 헌정하고 다른 용도로 전용하지 않고 병원으로 존속되기를 희망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종업원과 가족들에 대한 배려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는 참으로 다행스럽고 더 큰 불행을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하다.
지금까지 37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숱한 어려움과 시련을 감내하면서 분도병원을 오늘에 이르기까지 발전시켜온 수녀회측의 노고는 누구도 과소평가하지 못할 것이다. 병원구석구석마다 수녀들의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며 그들의 애정과 희비가 배어있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총원장 김지상 수녀가 밝혔듯이 1951년 부산에 정착한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또수녀회는 분도병원을 세우면서 자랐고 또 병원이 오랫동안 수녀회 본원이었다. 그러기에 『운로수녀들은 병원을 고향으로 생각하고 어렵던 그 시절의 감회를 즐겨 회상하곤한다』고했다.
순전히 인간적으로, 그리고 세속적으로 생각해보면 수녀회의 고향이며 수녀회가 자라고 성장한 보금자리와 같은 분도병원을 폐쇄한 그들의 아픔과 허전함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줄 안다. 왜 그들인들 훌륭하고 좋은 시설을 갖춘 큰 병원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 병원의 운영으로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플러스알파와 혜택을 그들인들 모를리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 문을 닫고 교구에 헌정한 사연은 무엇인가? 역시 총원장 수녀의 말을 빌리면『우리 수도자들이 가진 자로 인식된 점 때문에 마음이 무척 아팠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번 분규가 병원폐쇄의 직접적인 발단이긴 하지만 이미 7ㆍ8년 전에 병원향방을 놓고 논란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유는 본래의 병원설립 취지대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의료봉사가 퇴색돼간다는 느낌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해 7월에는 경기도 광주에 성분도 장애자재활원을 설립하기도 했단다.
우리는 여기에서 수도회측의 결단과 용기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첫째 수도자가 가진자로 인식된데 대한 오해를 과감히 불식시켜 주었다는 점과 둘째 수도회본래의 사업취지가 퇴색되었을 때 미련 없이 포기하고 새로운 사업을 찾은 수도회 본연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 분도병원이외도 우리교회는 전국적으로 많은 병ㆍ의원을 운영하고 있고 또 사회복지시설이나 언론기관 각급 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여러 시설들도 노사문제에 관한한 결코 치외법권의 구역은 되지 못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분도병원의 사건은 사건자체로서 끝나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그들과 함께 아픔에 동참하고 새로운 출발에 격려와 성원을 보내야할 것이다. 아울러 그 같은 불행이 또다시 우리교회 내에서 재연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하고 주위를 둘러보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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