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주일 어떤 본당 신부님의 미사강론을 옮겨보겠다.
「요즘 신자들, 성직자를 존경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체 하지만 속마음으로는 존경하지 않아요. 그 원인이야 신부님들한테 전적으로 있겠지만 신자들도 잘 못하는게 많아요. 비록 사제가 인간적으로 모자라고 결점이 많다하더라도 인간을 보고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제가 갖고 있는 직책 곧 사제직 때문에 존경해야 합니다. 그 사제직 뒤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숨어 계시기 때문에 사제를 존경하는 것은 예수님을 존경하는 것이고 사제를 업신여기는 것은 곧 하느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신부님은 신자들이 성직자를 존경하지 않은 실례를 하나들었다. 어떤 구교우가 신부님 몇 분을 식사초대한 자리에서「신부님」이란 존칭을 사용하지 않고 시종일관「○신부, ○신부」하고 부르면서「○신부는 성질이 ○○하고 ○신부는 ○○가 잘못됐고」하는 식으로 신부님들 면전에서 신부님들을 공박하더라는 것이다. 그 신부님 말씀으로는 당장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나오고 싶었지만 초대해준 그 교우의 입장을 생각해서 차마 그렇게 못했다는 것이다.
또 어떤 평신도가「이제부터는 신부님들과 가깝게 지내지 않고 거리를 두고 지내기로했다」는 말을 듣고 그 이유를 물었더니「가깝게 지내면 지낼수록 실망만 더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실망한 내용을 물었더니 신자들에게는 사순절동안 극기와 희생과 보속을 실천하라고 하면서 정작 신부님은 그렇게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 신부님은 요즘 사제들이 옛날에 비해 거룩해 보이지도 않고 열심해 보이지도 않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또 옛날처럼 사제가 귀하고 소중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 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우선 사제들부터 반성하고 사제로서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 신부님은 사제직의 위치가 대통령직 보다 높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인간으로서의 사제를 보기보다 먼저 사제직을 수행하는 사제를 존경하고 사제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을 간곡히 당부했다.
사제와 평신도. 이 두 계층은 교회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들이다. 평신도가 없는 교회를 상상할 수 없는 듯이 사제없는 교회도 생각하기 어렵다. 하느님의 똑같은 자녀들이면서 교회 내에서의 직분이 서로 다르다.
우리는 사제 없는 시절의 신자공동체를 우리 교회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제의 필요성과 중대성을 얼마나 뼈저리게 느꼈던지 평신도들 스스로가 가 성직자단(假聖職者團)을 조직해 주교와 사제노릇을 했다.
이것이 절대적으로 잘못됐다는 통보를 받고는 즉시 해체했다. 그 후부터 사제를 모셔오기 위해 우리 조상들은 얼마나 가혹한 시련과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으며 바로 사제를 모시려는 일을 하다가 붙잡혀 순교한 조상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여러 번의 죽을 고비를 무릅쓰고 이 땅에 사제가 입국했을 때 신자들의 태도는 어떠하였는가? 세례를 받기위해 혹은 고백성사를 받기위해 그리고 일 년에 몇 차례 밖에 봉헌하지 못했던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불평 한마디 없이 기쁜 마음으로 수백리길을 걸어서, 그것도 붙잡히면 바로 목숨을 바쳐야하는 위험한 상황 속에서 사제를 찾아가지 않았던가. 그 당시 신자들에게 사제는 어떤 모습으로 비쳤겠는가? 사제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했겠는가?
혼자서 그 당시와 지금을 비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또 그때의 사제들과 오늘날의 사제들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박해시대 사제들이 수행한 사제직이나 오늘날의 사제들의 사제직이나 그 사제직은 조금도 틀리거나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단지 사제직을 수행나는 사제들의 수가 많아졌고 신도의 수가 크게 불어났으며 거기에 목숨의 위협을 받지않는 자유스런 신앙분위기와 시대환경의 변화가 변수로 등장한 것 뿐이다. 특히 제2차 바티깐 공의회로 인해 종전까지 별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늘에 묻혀있던 평신도사도직 활동이 교회의 공인과 함께 권장되고 있다는 사실이외 사제직 자체가 달라진게 없다.
문제는 물론 앞의 본당신부님 말씀처럼 사제들 자신에 있는지도 모른다. 일부 사제들의 말과 행동의 불일치, 세속화의 경향들, 사제로서의 훌륭한 모범을 보여주지 못하는 점 등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설령 일부 사제들에게 여러 가지 개선을 요하는 문제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바로 그런 문제 때문에 사제를 업신여기거나 존경하지 않는 것은 신자로서 취해야할 태도가 아니지않겠는가?
이 세상 어느 누가 인간적으로 완전할 수 있는가? 사제 역시 인간이기에 인간적인 실수와 약점은 이해되고 용납되어야 할 것이다. 사제는 결코 신(神)이 아니지 않는가.
사제 한사람이 감당하고 있는 사목영역이나 사목해야할 사람의 수, 또 평신도와 똑같은 처지의 인간으로서 사제가 겪어야하는 인간적인 제문제, 그리고 사제만이 당하는 말못 할 사정들, 이런 상황들을 먼저 이해하려는 자세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와함께 사제가 인간적인 결점이나 약점을 개선할 수 있는 진심어린 충고와 협력이 있어야할 것이다.
평신도가 스스로 사제를 비난하고 존경하지 않을 때 어느 부모가 자식을 신학교에 보내겠는가? 누워서 침 뱉는 격이 아닌가.
우리의 사제는 결국 우리 평신도들 속에서 태어나고 길러진다. 교회 내에서 사제가 존경을 받지못할 때 그탓이 사제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들에게도 꼭 같이 있음을 명심해야 겠다.
사제성소가 줄어들 때 한국교회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함께 걱정하는 마음들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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