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현대사의 한 장은 1980년 5월 18일 광주사태로 말미암아 가슴저미는 통한과 혈루의 비사가 기록될 것이다. 이는 광주에 국한된 지역적 상처가 아니라 동족에 의해 연출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일어난 만족적 비극이요, 역사적 시련이며 잊어버리지 못할 한 맺힌 참화이기 때문이다.
그 후 일곱 해가 바뀌었건만 민주화의 비원을 품고 산화한 호국영령들과 온 국민의 염원인 자유민주의 회복에로의 정치발전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더 후진하고 악화되어 가고있는 작금의 정치현실을 보면 통탄을 금할 길이 없다.
5ㆍ18부터 5ㆍ26까지 광주는 죽음이 덮친 지옥의 도시였고 비애와 절망과 비탄에 젖은 암흑의 세상이었다. 5월 27일 새벽 3시30분 계엄군은 무력으로 사태를 진압한 후 소위 관련자들을 모두 체포하여 폭도로 몰아 계엄군 법회의에 회부하였다. 기소된 피의자들은 성직자 변호사 교수 종교인 교사 학생 재야인사 등 무려 5백여명에 달했다. 거리와 집에서 만나는 젊은 사람들을 모조리 체포하고 연행하여 굴비 엮듯이 묶어 마구잡이로 끌어갔다. 혐의가 없다고 판단된 사람 천 6백여명은 수차에 걸쳐 훈방조치하고 일단 혐의가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은 각 군 헌병대 영창에 짐승처럼 분리 수감했다. 그리고는 날마다 가혹하고 잔인한 물리적 고문수사로 허위 날조된 혐의를 덮어씌우는 것이 소위 합동수사반의 수사방법이었다.
당시 광주사태 수습위원으로 각계 각층에서 11명을 지명하여 시민대표로 위촉했었다. 수습위원들은 시민들의 뜻을 모아 수습방안으로 7개항을 작성하여 계엄사령부에 제안했었다. 그때 시민대표와 계엄군 대표간에 「선수습 후대책」「선보장후수습」문제로 의견이 불합치했었다. 그러나 7개 수습방안은 지금에 와서도 누가 보더라도 참으로 정당하고 올바른 것이었다고 누구나 그 내용에 동감하고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계엄사에 제사한 7개항이란 ①계엄군(공수단)의 과격제지에서 빚어진 결과라는 것을 인정하라. ②구속 학생 및 민주인사들을 석방하라. ③인명과 재산피해를 보상하라. ④발포사실을 명령한 책임자를 처벌하고 대통령은 공개 사과하라. ⑤사망자들은 시민장으로 장례식을 엄수하도록 하라. ⑥무기는 자진회수 반납하고 계엄군의 무력진압을 엄금하며 평화적으로 수습한다. ⑦수습 후 시민 학생들의 처벌 및 보복을 하지 않을 것을 보장하라는 등의 내용으로 되어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명분없이 장기화하고 있는 계엄령을 즉각 해제하고 군부의 정치 불개입과 국방임무에 복귀할 것을 촉구하고 정치일정 단축과 민주화 실현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와같은 국민의 정당한 권리와 애국 애족의 충정과 사심없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정정당당한 제안과 주장이 어느 것 하나 관철되거나 성취된 것 없이 묵살되어 버렸다.
이제 다시 살펴보면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국민의 여망을 저버리고 시대적 요구를 역행하는 작금의 정치작태를 보고서 우리는 아스라한 벼랑으로 굴러 떨어지는 듯한 당혹감과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으며 민주 발전에 대한 일말의 기대와 희망마저 깡그리 뭉개버린 처사에 배신감과 분노를 달랠 길이 없다.
우리 국민은 독재정권의 연장이나 수직적 재집권을 위하여 상투적으로 위기의식을 조장하고 안보논리를 내세워서 독재체제와 호헌의 당위성을 강변하는 정치적 음모와 기만술책에 속을 만큼 어리석은 국민은 아니다. 집권의 욕망 때문에 국민의 의사에 반하여 국민이 원치않는 방향으로 정치를 끌고 가는 것은 조국과 민족에게 역사적 비운을 잉태케하는 비열한 행위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누구보다도 백성을 두려워하고 섬길 줄 알아야 한다. 백성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국민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진리 앞에 무릎을 꿇을 줄 알아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민주적 방식과 절차에 의하여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대통령 선거가 치러져야 하며,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받은 다수 득표자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당연지사이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국민의 화합과 단결이 요구되는 때이다. 국민적 화합은 힘에 의한 강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자발적인 동의와 참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화합이어야 화합에 의한 단결과 일치와 사회 안정이 이루어진다. 통치자를 잘못만나서 국민이 독재 권력에 시달리는 나라와 역사가 있다. 선량한 사람을 괴롭히는 권력이 되지 말아야 한다. 억울하게 당하고 울먹이는 백성이 없는 정치여야 한다. 죄 없는 의인의 목숨을 빼앗는 권력이 되지 말아야 한다. 그런 통치자는 국민의 존경과 지지를 받지 못하고 원망이 하늘에 사무치게 된다.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는 재판이 되지 않아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는 어둠을 비추는 찬란한 광명이시고 모든 생명의 주인이시며 죽은 이들을 살리시는 분이시므로 결코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모른체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적 사랑의 힘만이 이 나라의 현실을 어둠에서 광명에로, 절망에서 희망에로, 다툼에서 화합에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용서의 길이요 화해의 도구이며 구원의 견인차이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해방시켜 주셨다.(로마6ㆍ7).
우리는 억울하게 자식을 잃고 혹은 형제를 잃고 혹은 친구를 잃고 고통과 슬픔을 참고 사는 독재의 희생자들과 피해자들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눔으로써 그들의 진정한 이웃이 되어야 한다. 사도 바울로는 『즐거워하는 사람과 더불어 즐거워하고 우는 사람과 더불어 울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웃의 불행이 바로 나의 불행이요 이웃의 상처가 곧 나의 상처로 느껴질 때 우리는 진정 이웃을 이해하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광주의거 희생자들과 다른 희생된 모든 민주인사들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 기도하고 그 희생자 가족들을 위해서도 기도와 사랑을 아끼지 말아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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